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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등록일 2024-11-14 18:09 게재일 2024-11-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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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모두 떠난 재건축아파트

복도식 현관문마다 흰 페인트로 크게 X가 그려 있다

40년 넘게 새와 바람을 불러들이고

그늘을 만들던 나무들은

빽빽한 나이테를 드러낸 채 밑동이 잘려 있다

제집을 잃은 새들은

키 작은 나무를 뽑느라 파헤쳐진 흙바닥에

기억의 뿌리를 찾아 부리를 박기도 하고

붉은 발바닥 도장을 찍으며 서성인다

나무들이 다 어디 갔는지

둥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널브러진 잔가지 위에 앉아 두리번거리다 날아간다

강변에서 저녁놀 묻은 발을 끌고 둥지로 돌아온

몇 마리 비둘기

발을 헛딛는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파괴. “40년 넘게 새와 바람을 불러들”여 왔던 나무마저 무참히 “밑동이 잘려”나간 모습을 보라. 사람들 사는 집을 새로 짓는다고 나무 위에 지은 새들의 집을 파괴해버린 것. 위의 시는 자연을 파괴하여 뭇 생명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없애버리는 현대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바, 흰 페인트로 현관문에 그려 있는 ‘X’가 현대 사회의 파괴성을 을씨년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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