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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秋

등록일 2024-11-12 18:16 게재일 2024-11-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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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택

다시 잎이 진다, 저녁의 바람이

어디론가 몰려가 어둠에 섞이고

저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는 이는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뉘우침의 감옥에 갇힌다,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짧게는 약이 될 저 소리는 제 몸에 젖어 있는 기억들이

내지르는 비명이다, 환하게 만들다 결국에는

더 큰 구멍으로 자신의 몸을 관통할 총탄이다

누가 서글픔에 창문을 본다, 나무들의 침묵, 그 사이로

떨러지는 붉은 울음들, 삶의 배경이 되는 허무의 울음들

그리하여 어떤 이는 먼 바다에 이르러 굽이치는

자신의 파도를 달래느라 우두커니 연민의 배경이 되고

또 어떤 이는 제 침묵 속에 기다란 막대기를 집어 넣어

죽은 노래를 깨운다, 날이 가물고

펄럭이는 것들이 굶주린 정원에서 헤매이고

비명 소리는 자지러지게 울려 퍼진다

대개 사람들은 ‘가을’ 하면, 낙엽에서 연상되는 쓸쓸함과 애상의 이미지를 떠올릴 테다. 하나 위의 시는 애상을 넘어 매우 고통스럽고 강렬한 가을 이미지를 보여준다. 어둠에 섞인 가을 저녁 바람은 “뉘우침의 감옥”에 어떤 이를 가두고, 자신의 몸에 총탄을 박도록 그를 끌고 간다. “자지러지게 울”리는 비명의 이미지로 가득한 가을. 가을은 “허무의 울음들”을 ‘배경’으로 부르는 “죽은 노래를 깨”우는 계절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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