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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점심 2023~2024 (부분)

등록일 2024-08-25 18:37 게재일 2024-08-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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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조

삼십 년 전 구로 3공단에서 납땜 경력 쌓은

편집도 하고 경리도 보는 출판사 관리팀장

앞세우고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 빌딩

지하 케이터링 업체 네댓 줄로 식판을 들고

줄을 선다 양도 많고 값이 싸니까

 

(중략)

 

굴뚝이 디지털이 되었다 하더라도

밥과 국그릇에 스파게티만 가득 담은 청년과

노동에서 손을 뗐어도 한참 되었을 노인이

몰래 비닐봉지에 닭튀김을 꾹꾹 담는 것 사이에

산업화 시대와 디지털 산업 시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식권 열 장 카드로 사면 칠만 원

현찰로 사면 열한 장 칠만 원 사십 년 전보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유리빌딩 지하의 점심에는

노동과 임금 수준과 체계에는 아직도 금일 저녁

야근을 할 건지 말 건지 질문이 담겨 있다

야근자에게는 저녁 식권 한 장이 주어진다

 

삼십 년 전 노동자와 현재 노동자 처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다. 둘 다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의 보수를 받고 있어서,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야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한다. 야근하면 저녁 식권이 주어져서 저녁 비용을 줄일 수 있기에. 공장이 빌딩으로, “굴뚝이 디지털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밥값을 줄이기 위해 저녁의 삶을 포기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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