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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시간들(부분)

등록일 2024-08-22 17:51 게재일 2024-08-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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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희

강물에서 멱을 감다가

난 곧잘 모래 위에서 뒹굴곤 했다

뜨겁게 달구어져

머리카락이며 옷이며 신발이며

물기만 있으면 달라붙던 작은 알갱이들

 

그때쯤이면 달착지근한 냄새가

근처에 있던 어머니의 떡함지로부터 풍겨왔다

어머니의 손끝에선 밤과 낮이 찧어지고

긍지와 수난이, 희망과 오해가 빻아져서

색색깔의 꿀떡, 바람떡, 시루떡으로 빚어지곤 햇다

몰래몰래 집어먹던 떡에 모래 알갱이들이 함께 씹혔다

 

모래들은 다리가 되고 빌딩이 되었다가

다시 부스러져 내리고

허파 가득 채워지는 바람의 부피

입안에서 서걱이는 모래의 시간들

 

강변에서 멱을 감던 시절, “물기만 있으면 달라붙던 작은 알갱이들”은 시인에게 점착된 행복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삶을 부드럽게 기억으로 감싸며 달라붙는 시간. 아버지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어머니-자연’의 시간. 이 시간에는 “근처에 있던 어머니의 떡함지로부터 풍겨”오는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떡함지 같은 그 시간에는 어머니와 같이 가난한 이들의 “긍지와 수난이, 희망과 오해가 빻아져”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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