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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등록일 2024-08-16 10:46 게재일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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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 스님(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 스님(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장).

예전 청주의 한 공원에서 몸소 겪은 일이다. 앞을 못 보던 어느 맹인이 타인의 수십 년 먼 훗날의 운세를 봐주고 있기에 하루 종일 그를 지켜보며 소일했던 적이 있다.

점사를 묻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그의 호구지책이 염려가 되기는 하였지만 ‘크게 구김은 없겠구나’ 하며 해가 저물어가던 공원 벤치에서 막 일어서 요기를 하려가려는 찰나였다. 그도 일과를 다 마친 듯 접어두었던 맹인용 하얀 스틱을 꺼내 들고 공원을 막 나서려고 하다가 가로수 나무에 걸려 휘청거리는 모습을 봤다. 맹인이 고객들의 수십 년 세월의 운세와 점을 잘도 쳐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몇 시간, 몇 분 후의 운명은 모르는 법이다. 살아간다는 건 예측불허 미지의 세계다.

현대사회가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전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천기를 읽어내고 일기를 예측하지만, 오늘 오후엔 비가 올 것이라던 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의 운명도 어느 날 어느 시에 운명의 장난에 의해 어찌 될지 모르는 처지여서 근친 혈육들이 재산상속 문제로 법적 송사를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왔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살아생전 유서나 유언을 해 두는 것이 사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한 치 앞조차도 예측불허인 삶을 예비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

16세기 일본은 백년이 넘도록 센고쿠시대(전국시대)로 수많은 다이묘들의 힘의 각축장이었다. 날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화가 그침이 없던 시절, 일본 열도의 통일을 거의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라는 무장은 18세가 되던 해 부친인 오다 노부히데로부터 가독(가장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물려받았다.

가독이나 당주란 안동 명문 집안의 장자에서 장자로만 이어지는 종손처럼 가문을 번성케 하는 막중한 책무와 재산과 노비들이 주어진다.

봉건영주의 시대, 많은 가신을 거느리고 전쟁에서 오직 승전을 하는 길만이 다이묘 자신 뿐 아니라 가문의 멸문지화와 가신들의 불운을 막는 최선의 상황. 그는 독점적으로 물려받은 가독의 자리를 기반 삼아 천하통일을 위한 기틀을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또한 스물네 명의 자녀 중 장자인 오다 노부타다에게 가독을 물려주려는 의도였다. 일단의 군사를 맡겨 고도의 훈련을 시키던 시기에 그는 명리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49세가 된 오다 노부나가는 어느 날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자신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측근에게 자신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동일한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을 데려 오도록 명령했다.

교토의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에 머무르고 있던 그에게 불려온 대장장이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와 사주팔자가 똑같은데, 어찌 하찮은 대장장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가?“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은근히 내세우며, 대장장이의 변변치 못한 모습을 보며 즐기듯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장장이는 고개를 바로 들고 이렇게 말했다.

“현재 주군의 명성이야 세상에 자자하니 누구든지 부러워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제의 일인 것이고 내일은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이 말에 불같은 성격의 오다 노부나가가 칼을 빼들고 대장장이의 목을 치려 하자 곁에 있던 측근들이 말렸다. 주군의 명성에 흠이 된다며 참으시라 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 노부나가가 머물던 임시 처소인 혼노지의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있어 잠에서 깼다. 자신의 측근 중 가장 충신으로 불리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휘하의 부하장졸 1만3천여 명의 군사를 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이다. 일본 역사의 그 유명한 반란, 즉 혼노지의 변고(本能寺の変)가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불과 100여 명의 남짓의 가신들과 그곳에 머물고 있어 제대로 응전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예감하며 혼노지에 불을 질러 생을 마감한다. 인근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훈련 중이던 장남 또한 몰려드는 반란군에 대항하다가 할복해 자살했다. 대장장이가 말한 그대로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왜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오다 노부나가의 성정이 매우 거칠고 부하를 함부로 다루면서 원한을 품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돈다. 또한 천하통일의 과실을 아케치 미츠히데가 가로채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혼노지의 변고는 한국 현대사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박정희의 친위대장이기도 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10.26사태 하극상과 유사하다는 사가들이 평가가 있다.

오다 노부나가처럼 박정희도 가장 신뢰하던 측근에게 배신을 당했다.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음이다. 혼노지의 변이나 궁정동 만찬장에서의 시해 사건에서 보듯 역사의 흐름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급격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난다.

일본 전국시대의 종결과 통일시대를 여는 변곡점이 된 혼노지의 변처럼 1979년 10월 26일도 한국 현대사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다 노부나가와 박정희의 비극적 죽음. 그 이면에는 사소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천하통일을 달성한 후 장자에게 가독을 상속하려던 오다 노부나가의 꿈도 그렇게 혼노지의 변고와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권력과 부는 영원할 수 없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독점한 이도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린 이도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처참히 몰락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영웅도 한순간에 비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이 이 두 사건에 잘 나타나 있다.

권력을 지키려고, 재산을 지키려고 아무리 철저히 대비한다 한들 운명을 피해 갈 수는 없으니 그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를 일이다.

“敵は 本能寺に あり!!”

무장 가문들 간에 처절한 살육과 암투가 절정을 치닫던 그 센고쿠시대, 1582년 6월 2일 새벽 6시,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 1528-1582)가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묵고 있는 혼노지를 포위하고 쳐들어가면서 부하들에게 내지른 명령은 이 한마디였다.

불의에 모반을 당한 오다 노부나가는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피와 땀으로 어렵게 일구어 온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화염 속으로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갔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헤이안(平安) 시대 이후 오랜 세월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을 이루어 온 교토(京都)의 웅장하고 화려했다는 대찰 혼노지에서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던 오다 노부나가는 충천하는 살기와 날름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마지막 광기를 드러내며 불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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