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봉
나이 수만큼의 표정은 눈길 뒤에 숨었을까
거울 속엔
무덤덤한 그녀의 얼굴이 살고 있다
손댈 수 없는 네 표정을 문질러 보았다
슬픔이 겹겹이 밀리면서 속눈물은 말라갔다
(중략)
얼굴은 알아보지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는 카그라스증후군
어떤 추억도 살아남지 못했으매
그 옛날 눈 감은, 입술의 접점을
느리고 생생하게, 음표로 베낀 간주곡,
이따금씩 반짝이는 바람결
저 구름 호수의 무늬들
보일 듯 말 듯 한 그녀 얼굴, 보일 듯 말 듯.
거울을 언뜻 보자 ‘저 사람이 누구지?’라고 의아해 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될 때가. “어떤 추억도 살아남지 못했”을 때 그런 착각이 일어날 터, 추억의 말소는 “슬픔이 겹겹이 밀리면서” 이루어진다. 하나 시인은 저 낯선 얼굴이 느리게 재생하는 ‘간주곡’을 듣기 시작한다. 그러자 ‘구름 호수’가 된 얼굴에서 ‘바람결’이 “이따금씩 반짝이”고, ‘그녀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하기 시작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