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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 風(먹, 바람) 무여 문봉선 경주 그림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7-09 18:20 게재일 2024-07-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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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소나무 숲에 들어간 듯한 ‘먹, 바람’ 전시회에서 솔숲의 소리를 들었다.
월요일 오후에 찾아간 것이 화룡점정이었다. 관람객이 우리뿐이다. 태양이 길게 전시장 깊숙이 햇발을 디밀었다. 우리의 그림자도 따라 길어졌다. 일을 마치고 포항에서 경주까지 숨도 참고 달려가니 문 닫기까지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경주 플레이스C가 6월 6일부터 9월 8일까지 ‘먹,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무여 문봉선의 경주 그림을 전시한다고 해서 달려갔다. 입구에서 받은 입장권에 소나무 한 그루가 몸을 비틀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용의 비상 같기도 하고, 바람을 견디며 바위에 뿌리 내린 장군의 위풍당당한 풍채 같기도 하다.


문봉선 화백의 주요 작품 소재인 경주 소나무 숲은 왕릉을 수호하는 도래솔이다. 삼릉, 오릉, 경주 능의 주위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경계를 선다.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릉은 소나무 숲속에 있고, 석탈해 능 주위에도 모두 소나무가 몸을 기울이며 수백 년 자리를 지켰다. 아마도 숲과 경계를 짓기 위해 둘레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이것을 도래솔이라 한다. 도래는 ‘둥근 물건의 둘레’란 뜻이고, 거의 다 소나무를 심어 둘레솔이라 했고 그러다 도래솔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래솔을 심은 뜻은 이승과 저승의 가리개 역할이 크다. 조상이 이승을 보지 않게 하여 걱정을 덜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서 고생하고 가셨는데 저승에서 더 이상 이승을 보지 말고 편히 쉬시라는 뜻이다.


‘경주 송림을 만 번 그리겠다.’라고 결심한 문봉선 화백의 손에서 소나무는 다시 태어났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첫 소나무 그림의 키가 높다. 언덕을 올라야 보이던 선덕여왕릉의 소나무 병풍 같다.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졌다. 맞은편에 홀로 선 소나무는 역광으로 찍은 사진 같다. 몸통 뒤에 해가 숨어 그 그늘에 사람을 잠시 쉬게 한다.


정원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에 글씨가 가득하다. 이 또한 전시의 한 부분, 그리로 걸어 들어갔다. 갑자기 연못 중심에 들어와 버렸다. 연 줄기에 앉은 물총새 울음소리가 주위를 맴돈다. 연꽃이 꽃문을 여는 소리도 들린다. 작가의 연밭에 초대받은 청개구리가 되어 연잎 사이를 유영한다.


아직 연향에 취해 몇 발자국 옮기다 숨이 헉했다. 소나무 숲이 성큼 우리를 감싼다.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난다. 지난밤 비가 내렸고 새벽엔 물안개가 소나무 사이로 피어올랐다. 천년 신라의 혼을 담은 먹푸른 소나무 숲에 오롯이 우리뿐이다. 숲 가운데 벤치에 앉았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황룡사지에 서서 머얼리 경주의 능선을, 달빛 아래 교교히 선 석탑을, 경주 남산의 부처님의 부드러운 옷자락까지 작가의 붓은 먹과 바람을 종이 위에 자유자재로 부려 놓는다. 작품 속에 경주가 조용히 담겼다.


전시회 동안 연계프로그램도 5차례 펼쳐진다. 6월 25일 ‘유나방송 정목스님과 함께 보는 경주 소나무 그림’을 시작으로 7월 6일 ‘슬기로운 전시 생활-손철주 미술평론가와 알아보는 그림 속 경주 풍경’을 진행했다. 아울러 ‘KBS 진품명품 김영복 감정위원과 함께하는 무여 문봉선의 경주 그림(7월중)’ ‘유명 도슨트 김내리 대표와 함께하는 무여 문봉선의 경주 그림(8월중)’ ‘정병모 교수와 함께하는 무여 문봉선의 경주 그림(8월중)’ 등을 순차적으로 연다.


전시회를 돌아본 후 방명록을 쓰라고 입구에 화첩과 함께 붓과 먹을 준비해 놓았다. 사람들이 어떤 후기를 남겼나 싶어 넘겨보니, 소나무 숲에서의 감흥을 조금씩 그려놓았다. 우리도 붓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이름 석 자 그렸다. 먹, 바람이 경주에 가득하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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