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잘 챙기고 있지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때 건강은 큰 병이 없고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잘 지내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주로 신체건강에 국한하여 일반질환이 없는 상태이고 정신건강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건강의 상식이다.
정신건강의 안부를 묻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여전히 편견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또는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왕따’를 당할 수 있는 두려움이다.
우울증, 강박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평생 동안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걸린다. 과거보다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개선되었다는 발표도 있다. 고학력 사회 구조에 따른 변화된 요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지난해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의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 사회는 보다 관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질문에 우리국민들이 동의하는 비율이 31%로 29개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로움에 걸맞게 국민정신건강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정부가 정신건강 정책을 적극적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발표내용 중에 관심을 끈 대목이 있다. “예방, 치료, 회복중심으로 정신건강 정책을 대전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정신질환도 일반질환과 같이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정신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정책에도 큰 비중을 두겠다는 담론이다.
유럽정신건강분야에 연구하는 학자들이 2000년에 ‘좋은 정신건강(good mental health)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좋은 정신건강은 개인이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통제력 조절역량을 소유하고, 또 고통과 난관에 직면하여도 생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행복한 상태(a state of well-being)로 규정하고 있다. 좋은 정신건강의 상태로 유지하고 향상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건강의 문해력(mental health literacy)’을 포함한 13가지 핵심요인들을 제시했다.
그 요인들 중에 ‘정신질환에 대한 태도’를 두 번째 요인으로 선정했다. 시민들이 정신병을 가진 사람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배제하는 정도를 넘어 낙인을 찍어 차별적 행동을 보이는가.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도가 심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좋은 정신 건강 상태를 유지하거나 치유하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시민들이 정신병에 관한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교육과 홍보도 우리 사회 정신건강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
포항시민들은 2017년 11월 15일에 지진규모 5.4 촉발지진의 발생으로 주택과 건물이 붕괴되었고, 정신과 신체에도 큰 충격을 가했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지진의 충격은 생존기반을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신체적 고통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여진도 2~3개월 지속되었고, 본진에 이어 여진 지진규모가 4수준까지 발생하였으니 다수 시민들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우울증, 불면증, 어지러움 등의 증세로 트라우마반응을 보였다. 큰 소리가 나면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면서 지진공포심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영일만 앞바다 석유탐사를 위해 시추한다는 발표만으로 시추에 따른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게 포항시민들이다. 포항시민들만이 겪는 집단트라우마의 반응이자 증상이다.
지진재난만 아니다. 코로나 재난 발생으로 3년여 동안 감염과 치유의 후유증에 신체, 정신 고통에 피할 수 없었고 2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연속·중복재난을 당했다.
재난에 따른 집단트라우마에도 포항시민들은 힘을 결집하여 빠른 시간에 남다른 회복력을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지만, 연속된 재난 발생에 따른 ‘드러나지 않은 집단트라우마(invisible collective trauma)’도 숨어 있다.
포항시민의 정신건강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 지속적 실현되어야 하다. 예방, 치료, 회복을 위한 정신건강프로그램의 개발에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우리 지진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시민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선도적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