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렸을 때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지금은 고 3인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생방송을 하는 방송작가 엄마 때문에 학교에서 가장 빨리 등교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한 3월 모든 게 어색했을 막내에게는 아침 7시 30분 등교가 가장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잠이 덜 깬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엄마 늦었다”를 무한 반복하면서 학교를 보내야 했다. 막내는 잠이 덜 깨서 울먹이면서 차에서 내렸고, 날씨가 추우면 차에서 덮고 있던 담요까지 둘둘 말고 차에서 억지로 내려야 했다. 아직도 담요를 덮어쓴 채 어깨를 실룩거리며 내렸던 8살 꼬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나 울컥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로 살았던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치열했던 순간이었다. “왜 엄마만 맨날 바빠?”라며 목 놓아 울던 아이들은 이제 고3이고, 스무 살을 넘겼다. 가끔 아이들에게 “엄마가 바쁜데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맙다” 진심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었던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출산과 육아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출산 파업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심각한 문제다.
2023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0.72를 기록했다. 경북 사정도 비슷하다.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0.86(2023년 기준)이며 포항의 사정은 더 심각해 지난해 기준으로 0.65대로 떨어졌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최하위는 물론 세계 최하위다.
국가나 지자체에서도 눈에 띄게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관련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 정책이 장기적인 정책이라기보다 단편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에 치우친 정책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시의원은 출생률을 높인다며 골반 근육 강화 운동인 ‘케겔 운동’ 동작을 넣어 만든 댄스 체조를 선보여 논란이 되었다. 여성의 몸을 건강하게 해 출생률을 올리자며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여성 1년 조기입학’ 제안을 비롯해 대구시의 정자 분석기 무료 나눔,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팅’ 등 원인 진단이 제대로 안 된 정책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출생 정책 보니깐 아이를 더 낳기 싫어졌다’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경북도에서도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저출생 전쟁자금’ 모금에 나서고 있다. 처음 경북도의 전쟁 선포를 보면서 ‘저 전쟁은 경북도만 하면 되는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추경예산 심사 과정에 저출생 극복 관련 예산이 대거 투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경북도에서 22개 시군과 소통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저출생 관련 정책을 하달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지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정책이 지역민들에게 체감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를 낳아 잘 키우자는 정책에 굳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전쟁을 명명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전투태세로 저출생을 극복하자는 것이 과연 맞는 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고 출범한 정부다. 경북도는 22년 여가부 폐지에 발맞춰 빠른 속도로 여성정책 관련 국을 과로 축소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나 경북도에서 성평등 추진 체계를 폐지에 앞장서면서 역설적으로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저출생의 경우 돌봄에 대한 지원을 넘어 사회적 보육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개인적인 선택이나 문제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포항시와 경북도,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함께 키우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걱정을 덜어줘야 하고,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으로 수도권 집중을 막아야 한다.
가족 제도 안에 출생문제 만큼이나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 일자리에 대한 질적 성장을 통해 엄마가 일하면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성평등한 임금도 보장되어야 하며 보편적인 아빠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과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적인 부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 저출생 문제를 극복한다면 대한민국의 저출생에 대한 해답은 영원히 미지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역에서 엄마를 위한 책과 잡지를 만드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10년 넘게 포항에 살았지만, 지역에 네트워크를 찾지 못해 서울이나 해외에서 주로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고 했다. 이제는 포항에서 이 이야기를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나 글로컬 하게 저출생 문제에 접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앞으로 나는 엄마 당사자들과 함께 지역의 저출생 문제,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포항에서 출발해 전 세계 곳곳에 엄마들과 함께 연대하는 그 멋진 길 위에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