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A의 의도를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한 결과를 예측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판단해야 했다. 참고인으로 소환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K를 어떤 방식으로 대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한쪽에서는 굳이 수사 대상을 확대하여 일을 번거롭게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느냐, K는 단순히 사익을 취한 판매자일 뿐 A의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에서는 K가 A의 행위에 관련된 제반 상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고 자신이 A에게 제공한 도구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지와 그 결과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가 문제이지 책임의 유무는 이미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참고인으로 소환된 K가 A4용지 10매에 달하는 진술서를 제출했으나 그 내용은 대부분 사건과는 관련이 적은 K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다. 진술서 중간 중간에 A와 피해자들 사이에 전개되었던 저간의 사정들을 써놓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미 수사기관이 확보한 내용과 다르지 않은 ‘사실’을 서술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K의 과거에 대한 회상 부분은 이번 사건에서 K의 위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진술서의 페이지를 늘리려는 얄팍한 수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K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K 스스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를 돌아본 기록은 다른 사람은 공감할 수 없고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그저 개인의 회상이었으니.
일부에서는 진술서에 서술된 내용만으로도 K가 이번 사건의 전개와 결과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했지만 그 주장은 반대측을 설득하지 못했다. 다만 진술서 끝부분, K가 그날 취한 이득으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취했던 행동들에 대해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 대부분의 구성원이 동의했다. 하지만 도덕적인 비난이 법적 책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도덕적인 비난마저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견지하는 일부의 구성원도 있었다.
사실 K에 관한 것은 그저 지나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범죄자가 범행에 사용한 도구를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 몇 문장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문제를 확대시킨 것은 수사관 김이었다. 그는 범죄의 발생을 사전에 막았을 수 있는 몇 가지 단계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다. 그가 평소 일상의 모든 측면을 문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문장들 사이의 관계와 앞 문장이 뒤 문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반복적으로 사고 실험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이라면 당연히 수사관 김은 그렇게 할 사람이라고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노트에 정리하는 문장들을 보며 단순히 일기 같은 것이라 생각했고, 일기 같은 귀찮은 작업을 해내는 수사관 김을 좋게 보면 독특하고 나쁘게 보면 정상적이지 않은 별종이라 취급했기 때문에 수사관 김의 문제 제기에 대해 짜증을 냈다. 쉽게 말해 빨리 정리하고 다른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이상한 놈이 이상한 방식으로 건드려 모호하고 덩치가 큰 사건, 상황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사기관 상부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수사관 김의 문제 제기는 없던 일,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기관 상부는 이 문제 제기에 흥미를 보였다. 수사관 김의 문제 제기에 대한 결론이 자신들의 평판과 행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수사관 김이 문제 제기를 한 다음날 바로 어느 정도 입증되었는데 김과 친한 기자 한 명이 김의 문제 제기에 대한 기사를 썼고 무척 지루해 보이는 내용이었음에도 대중의 호응이 제법 있었다. 김이 제기한 문제는 댓글의 수와 공유의 횟수가 평소 범죄 기사의 서너 배를 넘었고, SNS상에서 주요한 토론 주제가 되었다. 토론의 제목은 이랬다.
‘범죄행위에 사용된 도구의 제조 및 판매자의 법적, 도덕적 책임에 관하여.’
인기 있는 토론 주제 순위를 매기는 한 사이트에서는 ‘K방산, 경제를 살리는 또 하나의 효자 종목,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누르고 9위에 랭크되었다. 실수와 무능으로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문제 제기와 그 해결의 방향으로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수사기관 상부의 의식과 의지를 고양시켰다. 수사기관 상부는 특별히 이 문제에 대한 팀을 구성했고 수사관 김을 전권을 가진 책임자로 지명했다. 김은 사전에 자신이 작성했던 노트를 팀원들과 공유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범죄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몇 가지 단계에 대한 수사관 김의 기술은 아래와 같았다.
1.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건·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를 시야에서 놓쳐버린 피해자의 실수와 그에 대한 A의 반응.
2. 이후 발생한 A와 피해자 가족들 사이의 사소한(아파트 동 현관 입구에 자전거 따위의 물건을 놓아두는 것에서부터 잘못 배달된 택배의 소재를 따지는 것, 현관 청소를 한 물이 서로에게 흘러들어오는 등등) 다툼과 이를 둘러싼 이웃들의 자세.
3. A가 아파트 동 현관 앞 잔디밭에 조성한 텃밭과 이에 대한 피해자 가족의 이의 제기, 관리사무소의 해결 방안과 그에 대한 A의 대응.
4. A가 K의 가게로 와 얇고 뾰족한, 비교적 긴 칼을 요구했을 때 K의 판단과 행동.
김은 각 번호의 문장 뒤에 볼펜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놓았다.
1.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건·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를 시야에서 놓쳐버린 피해자의 실수와 그에 대한 A의 반응.-작은 그러나 위험했던 해프닝에 대한 당사자들 각각의 대응에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각각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한 것으로 판단한다.
2. A와 피해자 가족들 사이의 사소한(아파트 동 현관 입구에 자전거 따위의 물건을 놓아두는 것에서부터 잘못 배달된 택배의 소재를 따지는 것, 현관 청소를 한 물이 서로에게 흘러들어오는 등등) 다툼과 이를 둘러싼 이웃들의 자세.-사소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의 감정의 악화를 불러일으킨 사안들이다. 여타의 정황과 이웃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이웃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인 중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핵심은 당사자들인데 당사자 간 묵은 감정을 점진적 혹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아닌 이웃들에게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3. A가 아파트 동 현관 앞 잔디밭에 조성한 텃밭과 이에 대한 피해자 가족의 이의 제기, 관리사무소의 해결 방안과 그에 대한 A의 대응.-당사자들, 특히 A의 분노발작을 유도한, 가해자로서 A를 있게 한 사건이다. 통념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전적으로 A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의 제기를 당사자 중 한 쪽인 피해자가 했다는 점이 아쉽다. 피해자가 아닌 제3자 혹은 관리사무소에서 선제적인 제지, 혹은 해결 방안을 강구했다면 A의 분노가 피해자를 향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이것을 가해자가 아닌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4. A가 K의 가게로 와 얇고 뾰족한, 비교적 긴 칼을 요구했을 때 K의 판단과 행동.-수사관이 보았을 때 이번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다. K는 A와 피해자 사이에 있었던 저간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K의 진술서를 참고하자면 K는 어렴풋이 혹은 명확하게 A의 의도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안이한 판단, 사적인 이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범죄에 사용된 결정적인 도구를 A에게 제공했다. 판매를 거부했다거나 혹은 판매 후 피해자와 경찰에 연락을 취했더라면 끔찍한 결과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판매 대금을 사용하여 자신의 가족과 여유로운 일상을 즐겼다. 도덕적인 책임은 당연히 면할 수 없으며 법적인 책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관 김의 확고한 의지에 의해 K는 주요한 조력자 혹은 방관자로 지목되었고 그에 따라 법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어갔다. 다시 한 번 수사기관으로 불려가 이전에는 받지 않았던 심문 과정을 거쳤고 두 번째 진술서를 작성했다. 과거의 이야기는 쓰지 말 것과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 기술할 것을 요구 받았고 K는 충실히 따랐다. 그는 자신의 무고함을 설명하게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김과 그의 논리에 따라 심문하는 수사관들의 추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물론 구속 수사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김의 팀이 결론을 내고 K에 대한 기소 의견을 정리할 즈음 여론의 변화가 있었다. 조력자 혹은 방관자로서 K를 향했던 비난 여론은 주요 일간지 중 한 신문에 실린 사설-그렇다면 K방산은 칼이고 대한민국은 A인가, 미래 먹을거리 이렇게 날려버리나-이 나온 이후 방향을 바꿨다.
‘수사기관의 논리에 따른다면 지구 각지의 현실적, 잠재적 분쟁지역을 중심으로 판매 대상을 넓혀가고 있는, 가격과 성능 면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출 효자 K방산은 전쟁으로 인한 살인과 피해의 조력자, 방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도덕적인 잣대로 모든 문제를 바라본다면 죄인이 아닌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중략-별개의 문제라 말하지 말라. 이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한 문제다. 자영업자의 합법적 행위, 생계와 부의 축적을 위해 물건을 파는 행위는 우리 사회의 근본이 아닌가? 그 결과까지 책임지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유대한을 부정하는 행위와 같다. 무리하고 부당한 수사를 멈추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수사기관 상부는 대통령실과 국회로부터 전화가 오기 전 이미 방침을 바꿨다. 그저 일개 범죄 수사로 생각했던 사안이 국가의 가치관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관심은 자신들의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김의 수사팀은 해체되었다. 김이 끝까지 항변해 보았지만 조직 내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K는 혐의 없음이라는 통보를 받았고 수사기관 상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날 K방산은 모 국가와 1조5천억 원 상당의 판매 계약을 했고 언론들은 일제히 대서특필을 했다. 정치권은 앞다투어 환영의 논평을 내어놓았고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끝>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