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용옥 ‘도올, 포항사람 해월을 말한다’ 포항서 열강<br/>동학혁명, 3·1운동에 동력 제공<br/>역사·문화적 올바른 평가 부족<br/>고향에 기념시설물도 없어 애석<br/>거주지 ‘검등 포교’ 일대 알려야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한 가장 큰 거목 세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해월 최시형을 꼽겠다”
포항의 지역사 연구단체인 (사)동대해문화연구소(이사장 이석태)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8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개최한 ‘도올, 포항사람 해월을 말한다’ 강연에서 철학자 도올 김용옥(76) 전 한신대 석좌교수는 거침없이 말했다.
‘해월(海月)’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1827~1898)의 호(號)다. 도올은 “해월은 우리 민족사 19~20세기를 통하여 가장 심오한 정치사적 영향력과 민족주체적 사유체계를 정립한 혁명가이며 사상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성이 우리 민족 대중의 심성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도올은 “우리 민족의 독자적 사상, 동학을 창시한 스승 최제우의 뒤를 이은 최시형이 동학을 사상에 그치지 않고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등 현대사 100년의 동력이 되도록 이끈 지도자였지만 아직 평가가 부족하다. 역사, 문화적 가치에 대한 연구를 늘려야 한다”며 해월 최시형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한국 최초의 자생적 종교사상인 동학의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하늘·사람과 함께 만물을 공경하는 사상인 스승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 즉 ‘하늘을 모신다’는 가르침을 넓혀 하늘과 사람과 사물을 함께 높여야 한다는 ‘삼경 (三敬)’ 사상을 실천한 지도자였다. 동학혁명(東學革命)은 한국 최초의 민중에 의한 사회적 실천 운동이다. 해월이 전개한 ‘동학 정신’은 우리 민중의 깨우침이자 생명 사상의 원류로 평가된다.
도올은 “해월은 엄마의 친정인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포항시 신광 사람이다. 19세에 매곡리 밀양 손씨와 결혼했다. 28세에 신광면 마북동으로 옮겨 농사를 지었다. 신광면이 1789년 경주부 신광면으로 편입되었기에 당대에는 경주 사람이었지만 1906년 흥해군 신광면(현 포항시 북구 신광면)으로 개편됐기에 ‘포항사람 해월 최시형’이라 불러야 맞다”며 “해월의 선양사업은 포항 시민들의 몫”이라고 상기했다.
그는 “해월은 과거시험을 기준으로 하는 지식사회의 경쟁 구조에 끼어 본 적이 없는 일꾼이요 생활인이다. 해월에게는 경학을 중심으로 하는 개념적 지식의 훈련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식한 사람이 아니다. 지식인이 아니라 지혜인이다. 한문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동학에 입도한 일류 지성인들보다도 더 심오한 통찰력을 지닌 인간이었다. 수운의 통찰은 해월의 실천을 만나 인류사에 각인될 수 있었다. 해월이 수운의 법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해월의 순수함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도올은 이어 “그 후 36년간 사형수 수배자로 숨어다니면서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절대 평등을 설파하며 그 시대 신분제도, 남녀 차별, 직업 귀천의 차별을 혁파하고 인간의 마음 개벽을 주창했다”면서 “그는 동학사상을 전파한 위대한 인물이다. 인도에 간디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간디보다 더 훌륭한 인간을 위한 사상가이자 실천자인 해월 선생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올은 “최시형은 동학을 사상에서 나아가 동학혁명과 3·1운동 등 현대사 100년의 동력이 되도록 이끈 지도자였다”면서 “하지만 아직 올바른 평가가 부족한 만큼 역사, 문화적 가치에 대한 연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도올은 “포항에 해월과 동학을 기념하는 시설물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애석하다”면서 “이는 50만 포항 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 만큼 해월기념관 및 교육관 건립은 물론 해월의 거주지이며 ‘검등 포교’를 한 신광면 마북과 검등골 일대를 기념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강연을 마친 뒤 도올은 “포항이 가진 인문학적 소양의 잠재력을 포항 시민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으며, 이제 포항은 역사적·문화적 변방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