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를 먹다가 어금니가 깨졌다. 탕후루도 아니고 양꼬치에 이가 망가지다니. 고량주를 곁들이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취기 덕분에 와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길 수 있었으니까. 세상의 많은 일이 실없는 웃음처럼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취기가 가시고 입속의 빈자리가 선명해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오랫동안 덮어왔던 일을 열어야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치과에 가야 했다.
단언컨대 치과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단단한 것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 이토록 조그만 입속에서 벌어진다니. 병원에선 공사장에서나 들릴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머리가 아득하다. 진료용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불안이 점점 커진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천이 얼굴 위로 올라오면 본격적인 고통의 시작. 날카로운 기계가 치아에 맞닿는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리고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이가 약했던 나는 치과에 자주 드나들었다. 사춘기가 되어선 교정 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했다. 진료 날짜가 다가오는 게 싫어 억지로 급한 일을 만든 적도 있다. 대기실부터 병원 밖을 나설 때까지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았다. 아프면 손을 들라던 의사 선생님은 엄살을 받아주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은 치아 관리 잘하라며 무서운 얼굴로 혼냈으니. 내 괴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는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면 치과가 무섭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치과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두려움의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는 것. 어금니가 깨진 것 같아요, 하고 접수처에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선 단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의사의 진단이 끝나고 상담실에 앉아 설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치아의 상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보다 더욱 중요한 것. 대체 얼마일까? 금액을 받아 들자 머릿속에서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꺼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그러니까, 무이자 할부 몇 개월 가능할까요.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다. 치과의 권유대로 주기적으로 방문해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스케일링을 받으며 꼼꼼하게 관리했어야 옳다. 아니, 이전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던 많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미루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비단 치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덮어놓고 열어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방문을 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반드시 고치겠다던 주방 조명도 있다. 흩어져 있는 보험의 약관도 꼼꼼하게 따져보고 정리해야 한다. 자동차 트렁크에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타당한 핑계를 대본다. 강의가 있는 날은 몸이 너무 피곤하다. 하루에 두 번 강아지 산책도 시켜야 한다. 부쩍 좋아진 날씨에 반가운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어가고 챙겨야 하는 경조사도 끊이질 않는다. 덮어놓은 일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면 희미한 죄책감이 함께 따라붙는다. 정말이지 너무나 싫은 기분이다.
언제까지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 자의든 타의든 반드시 직면해야 할 때가 온다. 그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자책보다는 책임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미뤄둔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힘들 줄만 알았는데 도리어 개운한 기분도 든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대단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 년에 두 번씩 치과에 방문하기로 약속하며 선물로 칫솔을 받았다. 사탕 대신 칫솔이라니. 이래서 치과가 무섭다니까. 연두색 칫솔을 가방에 넣으면서 피식 웃었다. 치아와 잇몸은 자가 회복 능력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더 신경 써야 해요. 아직 젊잖아요. 맛있는 것 실컷 먹고 건강하게 지내야죠. 그 진부하고도 다정한 말이 사탕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병원에서 나오며 그간 덮어놓은 일들에 관해 생각했다. 조급해 말고 천천히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양치부터 꼼꼼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