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가을의 막바지, 푸른 바다 동해안의 블루로드 산길을 걷고 싶어 영덕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포항역에 가서 열차 시간표를 보니 하루 5회 왕복, 요금은 어른 2천600원, 어린이는 반값이고 경로는 1천800원이다. 영덕까지 4개 역 모두 승차요금은 같다.
플랫폼에서 만난 디젤 전동열차는 좀 낡아 보여도 오히려 옛날 완행열차의 추억이 되살아 올라 친근감이 든다. 2018년 1월에 개통되고 2개월 후 타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여 열차 내로 들어가니 승객은 적고 좌석 사이가 넓어 편안히 앉았다. 곧 출발해 ‘경북의 바다 역’- 월포, 장사, 강구를 지나는데 시골 역이라 승객은 거의 없고, 플랫폼도 좁고 여러 개의 터널도 지난다. 이따금 트이는 바다를 보며 40여 분을 달려 영덕역에 도착해 보니 역 건물이 홀로 잘난 듯 현대적이다.
역 바로 옆에 뚫린 작은 시멘트 터널 두 개를 지나 안내도를 따라 고불봉(高不峰·235m)으로 오른다. 차가운 바람이 살살 부는 산길을 오르며 빨간 망개나무 열매도 만져보며 정자가 있는 산마루에 선다. 영덕읍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이곳, 동해에 보름달이 떠서 봉우리에 걸쳐지면 두 개의 달이 보인다는 일명 망월봉에서 목을 축인다. 동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북쪽에는 풍차들이 돌고 있는 이 봉우리는 경치가 아름다워 유배를 온 고산 윤선도 선생이 쓴 시가 정자 앞에 놓여있다. 전망 좋은 고개마다 쉬어가며 나무 계단도 오르며 숲을 지나노라면 좁은 산길에 소복이 떨어져 있는 도토리들…. 이 산에는 다람쥐도 청설모도 없나 보다. 금진 구름다리를 건너 강구항이 보일 때쯤 잠시 쉬어가는 산막의 ‘숲속 도서관’에는 열댓 권의 책이 꽂혀있다. 축구장이 있는 생활체육공원을 내려다보며 산길 입구로 내려오니 ‘바다를 꿈꾸는 산길’ 10㎞를 4시간쯤 걸었다. 대게의 맛내음이 물씬 풍기는 항구에 오니 시장끼가 돌아 작은 식당에 들어가서 물가자미회에 해물탕 시켜놓고 일행들과 하산주를 한 잔 했다.
해그름의 강구에서 포항행 직행버스를 타려다가 열차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차비도 훨씬 비싸서 무궁화호를 타려고 역을 찾았는데, 20여 분이나 걸었다. 한적한 역에 올라가니 매표 창구는 운영하지 않고 자동발매기를 이용하던가 승차 후 승무원에게 구입하란다. 한참을 기다려 탄 야간열차는 여행의 끝맺음을 느긋하게 한다.
동해중부선의 시작인 포항역을 나오며 생각해 본다. 2020년 12월에 착공한 영덕에서 삼척까지 2단계 사업은 당초에 단선 비전철로 계획되었으나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강원 동해까지 172㎞ 전 구간을 전철화로 바뀌었고 현재의 철도 시스템 및 통신공사가 마무리되는 2025년 1월에 완공 예정이다. 전철이 연결되면 철도이용 서비스 확대로 동해안으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영덕 지방의 관광객 증가와 더불어 지역 균형발전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강원 고성까지 백두대간 등줄기 종단 철도가 완성되면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금강산을 지나 북으로 연결되고 함경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까지 연결되는 유라시아 횡단 철길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