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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쾌락주의

등록일 2023-11-19 17:08 게재일 2023-11-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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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이원만 시인

“현대 경제의 살 길은 소비패턴의 생산시스템에의 대거 반영이고 그 소비패튼은 여성 소비판단력의 우수성에서 기인하며 그 여성 소비판단력이 경제 대원리를 좌우한다.”

위의 말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임마뉴엘 윌러스틴과 폴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다양한 생물종의 멸종만이 아니라 인간의 멸종에 대한 경제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여성소비판단력의 우수성’이라는 말에서 왜 ‘여성’이고 ‘소비판단력’일까? 또 ‘우수성’이 뭘까? 이런 질문 끝에 ‘대안쾌락주의’ ‘녹색쾌락주의’라는 말들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의 생물다양성의 위기, 인간멸종의 위기라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지금의 문명이 주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원시시대로의 회기하자는 것이거나 자본주의 파괴와 새로운 사회체제를 세우자는 등 따라하기가 어려운 비현실적인 것들이 많다. 그렇다고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되는 텀블러로 에코빽으로 지구를 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등 생태적인 에너지정책을 잘 받아들였던 독일국민들이 겨울철 난방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히트펌프정책을 반발하고 나섰다.

가스, 석유보일러들을 히트펌프로 서서히 교체하자는 것인데 그 비용이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열효율이 좋고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줄이지만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도 가계가 부담해야되는 히트펌프가격만 2천만원 수준인데다 거기에 설치비, 난방효율을 높이는 건물수리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져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히트펌프를 써야하는 기간을 피하기 위해 새로 짓는 집을 짓는 이들은 가스, 석유 보일러를 미리 설치한다고 난리라고 한다. 거기에다 기계도 기계설치인원도 아직 부족해서 언제 설치될지도 모르고 기다려야하는 등의 불편까지 감수해야하니 원성이 자자할 만하다. 기후위기 대처에 적극적인 독일의 녹색당은 히터펌프정책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고 기후위기를 과장된 종말론으로 여기는 세력들에게 권력을 넘겨줄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기후위기에 잘 대응한다고 하는 유럽의 중심국가인 독일의 이런 사례를 보면 탄소중립과 기후위기의 극복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방향이 좋다고 하더라도 나의 노후대책을 무너트리고 세입자나 노인가구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외면받는다.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다.

‘여성 소비판단력의 우수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에는 이런 정치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깔려있다.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집안 일이든, 음식이든, 소비든 여성들의 판단력이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그 여성의 소비판단력이 우수해야 하는 것이다. ‘우수성’이라는 말에 ‘녹색쾌락주의’라는 말을 넣어본다면 우리는 어떤 소비미학을 가지게 될까?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게 될까?

-얼마든지 비행기를 타도 상관없다, 우리의 식습관을 줄일 수 있다면!

-핫 플레이스로 붐비는 여행지보다는 고즈넉한 힐링이 낫지 않겠는가!

-친환경 유행을 따라 에코빽을 더 사느니, 그냥 소비를 좀 줄여보자!

-개나 고양이만 예뻐하지 말고, 한 번쯤 돼지의 입장도 생각해보자!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이란 책에서 쇤부르크가 주장하는 고품격 녹색의 삶에 대한 몇 가지 제안들이다. 불편하지 않고, 맛을 즐길 기쁨도 놓치지 않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드레스스타일을 유지 하고, 여행도 즐기고, 스포츠도 즐기는 녹색의 삶은 불가능할까?

그런 녹색쾌락주의자들이 많아져 소비가 그런 기준으로 진행되면 자본은 어디에 투지를 할까? 육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지구열대화를 위한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생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소와 닭과 돼지를 개와 고양이 수준으로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정치가 제시하는 정책방향도 중요하지만, 그 정책이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디테일하게 만족 시키는 정책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우리의 고품격 녹색의 삶, 녹색쾌락주의자들의 지갑이 어디에 열리는가가 결정한다. 그것말고 다른 대안들은 솔직히 비현실적이다. 불편해서, 희생을 강요해서 싫은 것이다.

세계는 전쟁중이고 선진국들의 생태정책들은 후퇴하고 있다. 가능성이 낮지만 만약에 선진국들이 높은 수준의 규격을 만들어 낸다면 가난한 나라들은 그것을 따라하지 못해 많은 손해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문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모든 것들을 꿰뚫는 것은 ‘여성 소비판단력의 우수성’이다. 디테일하고 현실가능하지만 품격도 높은 녹색의 삶, 녹색쾌락주의가 앞으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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