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며 기온은 뚝 떨어지고 전국적으로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평년보다 3~5도 낮은 강추위가 올 거라고 예보되고 있다. 동쪽 바다에는 강풍이 불어 파도가 높을 거라고 한다.
이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의 절기이다. 무서리가 내린 아침 풀밭을 걸어 보면 발목이 시리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곧 산과 계곡은 낙엽으로 물들고 들판엔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하늘대며 풍요로운 가을을 노래하겠지…. 농부들은 벼를 추수하고 농사를 마무리하며 겨울 준비를 할 터,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뛴다’던 옛 농촌의 힘들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큰 농기계들이 훑고 지나간 들판에는 하얀 천으로 말아둔 볏단들이 한 해의 결실이다.
예전 같으면 보리 씨 뿌려 다음 봄날을 기다려 보겠지만 요즈음 보리 심는 경우는 드물고, 고구마 캐어 삶아 먹고 국화주 한 잔 마시며 그동안 수고를 돌아 봐야지…. 가끔 천천히 달려보는 마을 개천 가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지나가는 계절을 손짓하고 있다. 시골집 골목길 입구의 감나무에 몇 개 남겨둔 빨간 홍시는 직박구리 같은 텃새들을 불러 모으고 철새들은 벌써 남으로 날아갔는지 소식이 뜸하다. 까마귀 무리는 들판을 지나는 전깃줄에 모여 앉아 우리 인간들을 보며 수군대는 듯하다.
다음 주부터는 가로수도 단풍으로 물들 것이고 내연산 계곡에는 소풍객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날 것이다. 이제 더 날이 추워지고 된서리가 내릴 때면 수풀도 나뭇잎도 모두 시들어 가겠지만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국화가 만발하게 된다. 국화를 ‘신이 만든 꽃 중에서 마지막에 만든 꽃’이라던가? 서리 내리는 계절- 오상고절(傲霜孤節)에 피어난다고 꽃말은 고결(高潔)이다.
이맘때면 온 나라가 가을 축제로 흥청댄다. 축제의 계절이다. 포항은 지난 12∼15일‘일월의 빛, 포항의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제15회 일월문화제가 열려 부부 선발대회도 했고 풍물 공연 한마당과 춤 축제가 열렸었다. 그리고 영일대해수욕장에서는 2023 스틸아트 페스티벌이 열려 ‘Steel Wave, 포항의 꿈’을 형상화한 예술가 26명과 철강기업 20여 곳에서 제작한 40여 개의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다. 모래밭 체험 부스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러 나온 젊은 부부의 사랑스런 모습도 일렁인다. 스탬프투어에 끼어들어 스틸아트를 찾으며 10개의 도장을 찍어 조그만 기념품도 받았다. 작품들을 모두 둘러보고 형산강 하구 둔치로 갔더니 핑크 뮬리 밭의 분홍 물결이 강물 따라 출렁이며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시골집에 가서 잔디를 말끔히 깎고 화단에 떨어진 주먹만 한 노란 모과를 주워 바위 위에 모아놓으면 가을이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상추잎 뜯고 부추를 솎아내어 부추전 부쳐 막걸리 한잔하며 요즘 나랏일을 생각해 보니 추상(秋霜) 같은 하늘의 엄명으로 벌레 먹은 잎사귀 모두 털어내고 아름답게 단풍으로 물든 세상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