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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번뇌·시름말끔히 씻어 볼까

등록일 2023-08-31 18:15 게재일 2023-09-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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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과 푸른 가을이 숨어 있는 울진
울창한 금강소나무들 사이로 난 탐방로.
울창한 금강소나무들 사이로 난 탐방로.

울진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 울진의 늦여름은 어린아이의 말간 얼굴이 연상된다. 순수한 자연과 향기조차 그윽한 금강송 송이가 있는 곳. 계곡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면 세상사 시름과 번뇌조차 말끔히 씻어지는 곳. 이제 얼마있어 가을이 오면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듯 울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십이령옛길·산림유전자보호구역 품은 금강송숲길

220~300년 수령 100만 그루 원시모습 그대로 간직

마사토와 바닷바람으로 키워낸 ‘천하일미’ 금강송이

9~10월에만 잠깐 만나보는 호사 누려봐도 좋을 듯

백암산 신선계곡 옥빛 물길따라 즐기는 비경은 덤

금강송군락지 안내.
금강송군락지 안내.

◇조선시대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길

울진의 산은 그리 높지 않아도 등성이가 제법 험하다. 사람의 손길을 많이 타지 않은 산은 마치 부끄러운 듯 돌아서 있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조선 시대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십이령옛길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어우러진 길이다.

금강산에서 시작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자라는 ‘금강송’은 줄기가 곧고 속까지 알차며 강도 또한 일반 소나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소나무의 명품이어서 주로 왕실에서 쓰인다.

금강송이 시원하게 뻗어 있는 소광리 금강송숲은 들어서는 순간 시원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소나무의 바다다. 소나무 원시림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했다는 이곳에는 금강송이 100만여 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수령만 해도 200~300년이 넘는다.

생태숲 초입에는 금강송 중 무려 540년이나 된 금강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조선조 제9대 임금 성종 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니 그야말로 조선 시대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역사 그 자체다. 오백년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금강소나무는 지름 96cm, 키 25m, 수령 약 540년이다. 흔히 소나무는 200~300년 되면 노송(老松), 300~500년은 고송(古松), 500년이 넘으면 신송(神松)으로 불린다. 오백년소나무 외에도 못난이소나무, 육백년소나무 등 신송이 있다.

오백년소나무 옆 금강소나무전시실에는 금강소나무와 일반 소나무를 비교하는 자료가 있다. 금강소나무는 일반 소나무보다 나이테가 3배쯤 촘촘하다. 척박하고 추운 지역에서 더디게 자랐기 때문이다. 뒤틀림이 적고 강도가 높은 금강소나무는 궁궐이나 사찰 등의 건축재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삼척, 울진, 봉화 등 내륙의 금강소나무가 대량 벌채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해방 후 금강소나무 집산지(봉화 춘양역) 이름을 따 ‘춘양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으로 불린다. 속이 황금빛을 띠어 ‘황장목’이라고도 불린다. 궁궐과 천년고찰의 대들보로 쓰이니 살아서도 영광이요, 죽어서 목재가 돼도 천년을 이어 영화를 누린다.

금강송이 귀한 소나무이니 예전에는 금강송이 있는 숲에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다. 황장금표가 바위에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금강송을 1그루만 베어도 곤장 100대에 3년을 복역할 정도였다. 요즘으로 쳐도 중범죄에 해당할 정도니 조선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금강송을 귀하게 여겼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울울창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빽빽한 소나무숲 틈틈이 들어오는 햇살이 얼핏얼핏 얼굴에 닿으면 그지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쪽동백나무 커다란 잎사귀 사이로 들어오는 투명한 햇살이 보석처럼 빛난다. 숲길을 20분쯤 걸으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여기가 탐방이 끝나는 지점에 ‘송낙정’이 있다.

불영사  연못.
불영사 연못.

◇향긋한 명품 송이버섯

금강송 밑에는 또 하나의 명품이 자란다. 송이버섯이다.

송이버섯은 향긋한 솔잎향이 코끝에 오래 머물고 한입 베어 물면 착 달라붙는 식감이 일품이다. 산의 기운을 받고 자란 송이는 오래된 소나무 뿌리 끝부분에 붙어 기생한다.

송이버섯이라 해도 모두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울진 금강송 송이버섯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한 식감과 향기를 지녔다. 기생목인 명품 소나무 금강송에 화강암이 풍화돼 생긴 마사토와 바닷바람이 키웠기 때문에 타 지역 송이에 비할 수 없는 명품이 된 것이다.

울진 송이는 표피가 두껍고 향이 진하며 맛이 잘 변하지 않는다. 양양의 송이도 일품으로 치지만 울진 송이 또한 송이가 나는 어떤 지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맛을 자랑한다.

송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일미다. 버섯이 나오면 대개 구워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울진 사람들은 날것을 그냥 길게 찢어서 단숨에 입으로 옮긴다. 불로 구워 먹는 게 아니라 혀로 구워 먹는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에는 송이는 성질이 서늘하고 열량이 낮아 보양식으로 제격이라고 기록돼 있다. 항암효과도 뛰어나다. 항균·해독에도 좋아 한방에서는 귀한 약재로 여겨져왔다.

인공 재배가 안돼 9~10월 잠깐 시중에 나오는데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늦더위까지 겹쳐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송이값이 비싼데 물건이 귀하다보니 가격이 올랐다. 1㎏ 단위로 상품(上品)이 70만원선, 중간 등급이 40만~50만원선이다. 그나마 이 정도인 게 다행이다 싶다. 한때 송이가 귀했을 때는 ㎏당 80만원을 호가한 적도 있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 탐방로 안내도.
울진금강소나무숲길 탐방로 안내도.

◇신선이 노닐던 듯한 신선계곡의 풍취

울진엔 오지가 많다보니 구불구불한 심산유곡이 많다. 불영사까지 이르는 불영계곡도 뛰어나지만 백암산이 품고 있는 신선계곡은 금강산의 유수한 계곡보다 빼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 그대로 사방에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이 신선이 놀던 곳과 같다 해서 지어졌다. 기암절벽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울창한 수림계곡 곳곳의 담과 소는 비경 그 자체다.

백암산의 품에 안긴 신선계곡 6㎞의 풍경은 물이 많고 길며 기기묘묘한 바위와 계곡수의 조화가 화려하다. 용이 살았다는 용소를 비롯해 바위 아래로 파고든 계곡수가 함지박만한 그릇을 만들어낸다. 물은 온갖 사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그릇처럼, 호리병처럼, 너른 접시처럼 다양한 형상이 되어 사람들의 시각을 홀린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합수곡이 나타나고 독골용소는 바닥을 모를 깊이로 선뜻한 느낌마저 준다.

맑은 물이 흐르는 여름에도 뛰어나지만 단풍이 드는 가을철에는 실경이 아닌 선경이 펼쳐진다. 밑의 매미소를 지나 상류로 올라가면 작은 소들이 옥빛을 띠고 있고 바위 사이로 작은 폭포까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가족탐방로 주차장에서 18km쯤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내려오면 불영사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불영사계곡을 끼고 미끈한 금강소나무가 가득한 산비탈을 10분쯤 걸으면 불영사 마당으로 들어선다. 마당에 정갈한 고추밭이 인상적이고, 넓은 연못에 노랑어리연꽃이 만개했다.

대웅보전(보물) 계단 양쪽으로 돌거북이 머리만 내민 모습이 재미있다. 두 마리 거북이 대웅보전을 업은 형상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火山)이어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함이라고 한다. 연못 앞 벤치에 앉으면 산에 폭 안긴 듯 마음이 편안하다.

 

 

여행 정보

 

예전에는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워낙 오지여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었지만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을 비롯해 다양한 방송매체에 소개된 후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예약탐방제로 운영된다. 홈페이지(www.uljintrail.or.kr)를 통해 예약을 하고 출발장소인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안내센터까지는 직접 이동해야 한다. 구간마다 탐방 인원을 하루 80명으로 제한하고, 자격증이 있는 숲 해설사가 안내한다. 홈페이지에 7개 구간 소개와 난도, 소요 시간 등이 자세히 나온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만든 1호 국가 숲길로, 2010년 7월에 1구간이 열렸다. 총 7개 구간(79.4km) 가운데 현재 5개 구간을 운영한다(1·5구간 정비 중). 1구간(보부상길)과 2구간(한나무재길)은 보부상이 소금을 지고 다니던 십이령옛길이고, 3구간(오백년소나무길)과 3-1구간(화전민옛길)은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는 길이다. 4구간(대왕소나무길)과 5구간(보부천길)은 600년 넘은 대왕소나무를 만나는 길이고, 가족탐방로에서는 오백년소나무와 못난이소나무 등이 반긴다.

 

/최병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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