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뜨거워진 공기가 한반도를 뒤덮은 ‘열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정체된 대기를 뒤흔들어 줄 것으로 기대됐던 6호 태풍 카눈마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며 한동안 이 폭염을 감내해야만 할 것 같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 전체가 이상고온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에서는 에어컨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에어컨 사용이 환경파괴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강한 유럽인들에게도 올여름 더위는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폭염으로 인한 가뭄의 영향으로 미국 중부 곡창지대의 옥수수 수확량이 2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국제 곡물시장에서 식량 가격이 폭등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처럼 이상고온현상이 지속되다 보니 온열질환(열사병) 환자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야외작업이 많은 직업군은 물론이고,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거나 비용이 부담돼서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곤 하는 노년층과 저소득층이 온열질환에 특히 더 취약하다. 공사 기한에 쫓겨 폭염에도 공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공사장 야외작업자나, 잠시 밭을 돌보러 나갔던 고령의 농민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도시의 경우 쪽방촌이나 달동네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이 온열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이처럼 추위나 더위, 수해나 가뭄 등 기상위기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가리켜 ‘기후취약계층’이라고 한다.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기후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경북도내 온열질환자 109명 중 60세 이상의 비율이 42%(39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더위다. 노년층에게는 더더욱 버겁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적 돌봄 시스템이 붕괴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혼자, 또는 노부부 단둘이 살아가는 가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농촌지역의 경우 청년인구 유출 현상이 더해져 기후취약계층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농촌지역이 많은 경북의 특성상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다.
겨울철이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봉사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추위에 고통받는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추위뿐 아니라 더위 또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려 했는데 주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는 소식도 적지 않게 들린다. 에어컨은 사치재라는 낡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이다.
개인이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먼저 ‘냉방 복지’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기후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냉방쉼터를 설치하고 집 구조상 가능하다면 에어컨 설치와 전기요금 지원도 고려해볼 수 있다. 경비노동자의 경우 근무공간의 온도를 일정 기준 이하로 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법령이나 조례를 제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사회적 인식 또한 바뀌어 나갈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냉방도 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