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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며 뒤집히는 삼각형

등록일 2023-07-10 17:50 게재일 2023-07-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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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패션모델계에서 시작한 영화는 호화 유람선으로 무대를 옮긴다. 잠잠했던 유람선은 바다의 기상에 따라 흔들리고, 해적의 습격을 받아 침몰한다. 그리고 난파된 유람선에서 탈출한 8명의 사람들은 섬에 표류된다. 장소에 따라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셩된 영화는 1부 ‘칼과 야야’, 2부 ‘요트’, 3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3개의 구성을 관통하는 것은 ‘돈’이다. 돈을 축으로 계급과 인종, 성차별과 권력의 관계를 담는다. 숱한 상징과 은유가 있지만 깊거나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표면적이고 직접적이다. 1부인 ‘칼과 야야’에서는 패션모델계에서 남녀 모델의 차별을 다룬다. 모든 신체적 조건까지 세분화되어 평가되며 표정조차도 대중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에 따라 바뀐다. 차별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등급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패션쇼 무대 정면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낙관주의를 가장한 냉소주의’라는 제목이 있지만 맥락도 없고, 의미도 와닿지 않는다.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한 장치.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들의 치장을 지적한다. ‘평등’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지만 무대 밖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돈에 의해 자행되는 불평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칼과 야야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누가 돈을 내느냐의 문제로 다투는 장면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부인 ‘요트’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거의 모든 것들이 집중되어 있다. 호화 요트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자 첨예한 계급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부유한 탑승객과 이들을 시중드는 승무원, 노동자라는 3개의 계급만이 존재하고, 그들이 속한 계급 내에서도 역할에 따라 지위가 나뉜다. 요트라는 한정된 공간은 계급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그들의 활동공간이 철저히 나뉘는 장소로 작용한다.

이곳에서도 ‘평등’은 재등장한다. 1부 패션쇼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타이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문장이 단순히 있어 보이기 위한 보편적인 평등을 장식적으로 사용했다면, 2부에서는 보편적인 평등이 주는 위선과 조롱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평등을 말하고 그 평등함은 보편적인 혜택과 지위를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계급에 따라 ‘평등’이 주는 무게감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폭력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정된 공간, 단순한 장소는 돈을 향한 욕망과 계급을 달리하는 ‘평등’이라는 표면적인 언어가 주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견고했던 계급의 삼각형은 서서히 닥쳐오는 폭풍우와 함께 흔들린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폭풍우와 함께 조금씩 흔들리던 요트 위에서 배멀리로 인한 구토의 대향연(?)이 펼쳐지면서 우아함과 존엄을 잃고 무너지고 뒤집어 지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그려진다.

폭풍이 지나간 후 해적의 습격으로 배는 침몰하고 섬에 표류한 8명의 생존자들과 함께 3부가 시작된다. 견고했던 계급의 삼각형이 흔들리고 뒤집어 지면서 요트라는 기존의 세계가 붕괴되고 섬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다다른다. 이제 이곳에서의 8명의 생존자들이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계급이 전복되어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섬에서 필요한 생존에 관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사람은 청소부 에비게일이다. 이를 통해서 에비게일은 무리의 중심에 서게 되고 사람들에게 역할을 나눠주면서 새로운 위계질서를 만든다. 이전에 각자가 몸담고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는 무용지물이 되고 오직 생존과 연결된 것들만이 가치를 지니면서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진다.

흔들리고 전복된 삼각형은 사람만 바뀌었을 뿐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부와 명예에 따라 나눠졌던 계층이 오직 생존을 위한 기술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흔들고 굴려보고 뒤집어 보아도 삼각형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모든 것들은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조롱과 함께 발칙하게 그려진다.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라는 광고문구는 이해되지 않는다. 단 한차례도 웃질 못했다.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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