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에서는 어렵잖게 중세에 지어진 교회건축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건축 곳곳이 조각으로 장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길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파사드 벽면 위에도 고개를 살짝 들어 보기에 적당한 높이에도 성인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기둥처럼 서 있다. 가장 의미심장한 조각은 팀파늄(Tympagnum)에 들어가 있다. 팀파늄은 출입문 바로 상단 반원형의 너른 면을 가리키는데 주로 이곳의 조각은 부조 형식으로 나타난다. 빈도수로 보자면 영광의 그리스도나 심판자 그리스도 혹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옥좌에 앉으신 성모 마리아가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조각상은 교회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벽의 무게를 견디는 기둥에 돌출된 선반을 마련하고 그 위로 성인들의 전신 조각이 올라가 있다. 중세교회 건축과 조각장식, 당연한 조합 같지만 교회를 조각으로 장식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기독교 교리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문제 때문이다. 시간은 한참 거슬러 올라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수용하고 국교로 지정한 4세기 5세기 때 일이다. 처음으로 교회가 지어지고 교회에서의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품 사용에 대한 문제가 대두 됐다. 치열한 논쟁 끝에 그림 사용은 허용이 되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글을 알지 못했고 그림을 통해서라면 누구라도 쉽게 성서나 교회의 가르침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림은 허용되었지만 조각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이교(異敎)의 신상이 만연해 있었던 상황에서 기독교가 조각사용을 허락한다면 종교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교회를 장식하는 건축조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11세기 초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규모 교회들이 지어지면서 부터였다. 6세기에서 10세기 이르는 중세 혼란기, 혹자는 암흑기라 부르기도 하는 이 시기가 지나가고 낡은 교회들이 새롭게 단장되었고 곳곳에 웅장한 교회들이 지어졌다. 이시기를 거처 12세기 무렵 건축조각이 확산된 걸 보면 수 백 년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 이미 서유럽지역이 깊이 기독교화 되었고 조각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남부 프랑스의 도시 아를(Arles)의 생 트로핌(Saint-Trophime) 교회 파사드 벽면에는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 조각을 대표할 법한 중요한 작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2세기에 건축된 비교적 아담한 크기의 이 교회는 로마네스크 특유의 투박한 모습을 드러낸다. 인상적인 것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파사드 전체가 조각으로 장식되었다는 점이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 벽면에 부조에 가까운 전신 조각상들이 정렬되어 나타난다. 정문 위에 마련된 반원형의 팀파늄에는 옥좌에 앉으신 영광의 그리스도가 역시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정문과 팀파늄 사이 띠 형태의 좁은 면인 상인방(Lintel)에도 작은 크기의 인물 열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예수를 따르던 열 두 명의 제자들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들고나는 출입문 상단의 팀파늄은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간이다. 출입문은 타락한 세속과 성스러운 교회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팀파늄에는 죄를 자복하라는 경고의 이미지가 자주 나타난다. 근엄한 모습의 ‘심판자 그리스도’ 혹은 생 트로핌의 경우에서처럼 ‘옥좌에 앉으신 영광의 그리스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커다란 아몬드 모양의 전신 후광에 둘러싸인 그리스도 좌우로 둘씩 짝을 이룬 생명체가 나타난다. 이들은 신약성서 4복음서자를 상징한다. 그리스도 우편 아래에는 구원받아 천국으로 반대쪽 좌편에는 쇠사슬에 묶여 지옥을 끌려가는 영혼들이 나타난다. 감상자의 눈높이 좌우 벽면으로 서 있는 성인들은 독립된 조각이라기보다는 건축에 종속된 듯 보인다. 이들에게는 표정도 감정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미동도 없이 굳은 자세와 표정으로 건축의 한 부분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것이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조각의 특징이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