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처음 나온 진리나 시대를 앞선 사상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멸시나 탄압을 받는다. 조선 후기 1860년 경주의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한 동학이 그렇다.
수운 선생이 선포한 동학은 곧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사람은 모두 하늘님을 모신 인격체로서 양반 상놈 없이 모두 귀하고 평등하다는 사상을 세상에 선포하자 당시 노예적 신분질서와 생존의 한계에 처해있던 일반 백성들에게 급속히 확산이 되어 조선을 뒤흔들었다.
동학은 당시 난세의 조선 민중에게는 한줄기 새 빛과 같은 복음이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수운선생의 동학사상 전파를 반왕조적 사태로 규정하고, 탄압하기에 이른다.
결국, 수운 선생을 불온한 사상가로 지목한 조선 정부는 ‘나쁜 술책과 주문으로 사람들과 국가를 속였으며, 칼 노래로 반역을 꽤 했고, 간사한 동학으로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처형하였다. 수운 선생이 순도하자 그 뒤를 이은 제2대 교주가 해월 최시형 선생이다.
그는 1861년 35세에 동학에 입도하여 72세에 순도 하기까지 38여 년간 200여 곳을 도피와 은신을 거듭하며 떠돌았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최보따리였겠는가. 초창기 해월 선생의 동학 포덕 지역은 포항,울산,영덕,영해,영양,평해,울진등지였다. 그는 동해안 산간지역에서 풍찬노숙하며 굶주림에 극단적 선택에 이를 정도의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고난의 역정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후 또다시 지명 수배자가 되는 등 전 생애를 동학사상 구현에 몸 바치다 스승 수운과 같은 대명율을 위반한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1898년 7월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그렇다면 최시형은 누구인가? 해월 선생은 포항 출신이다. 해월(海月)은 그의 호다. 그는 현재 신광면 기일(터일)에서 성장한 포항 사람이다. 한때 그곳 검등골에서 가난한 화전민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세기 조선 사회의 강고한 신분철폐 등 만민평등 의식을 고취한 반봉건, 서양 열강 등의 침입에 맞선 반외세에 투쟁한 민중 혁명가이며, 인본주의를 실천한 민족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지명 수배자로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동학의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한편 관의 탄압으로 궤멸 되다시피 한 동학을 재건 하는 데 힘썼다.
그의 동학사상은 한말 의병운동, 동학농민혁명, 3·1운동, 상해임시정부, 대한민국 수립에 이르기까지의 그 영향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날 생명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어린이 인권운동, 평등사상 등 그 철학적 뿌리가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사상 정립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에 뿌리를 둔 민주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전통관념을 깨는 가부장제 철폐를 통한 부부 평등 주장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 인권 사상이었다. 그의 선각자적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흔히 포항의 정체성을 일월정신, 호국정신, 개척정신 등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월 정신은 연오랑세오녀 설화와 영일이라는 땅이름에 근거를 두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세상에 빛을 밝히며 풍요로움을 지향함을 뜻하는 정신이다. 호국정신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에 포항을 지킨 정신이다. 또 하나는 개척정신이다.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했던 제철 산업을 일군 뜨거운 가슴이다. 이 세 가지는 포항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정신적 가치관이다.
필자는 여기에 포항의 정신 가치관으로서 하나 덧붙인다고 한다면 해월 선생의 독특한 양천주(養天主)사상을 들고 싶다. 양천주란 한마디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지극한 마음을 기르고 길러 사람도 공경하고, 물건도 공경하고, 자연도 공경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렇게 해야 하늘인 사람이 하늘을 모시는 하늘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학의 근본인 시천주,인시천,인내천을 관통하는 실천적 사상이다. 오늘날 물질 만능과 가치관의 혼탁, 인간의 욕심과 개발로 자연파괴는 심각하다. 그 대표적 징후가 기후변화와 생물의 멸종으로 인류가 생존의 위기에 촌각을 다투고 있다. 이러한 인류 생존 위기에 당면한 해답을 동학은 그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포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동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단법인 ‘포항동대해문화연구소’가 주최한 ‘포항 사람 해월 최시형선생의 초기활동 학술세미나’ 개최는 수운선생의 삶을 알리는 하나의 긍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 영양, 영해 등 지자체에서는 해월 선생 유허지를 발굴, 보존,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등의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포항 사람 해월 선생의 인간적 면모와 그 위대성이 재평가되고 있음은 다행이다.
동학은 조선민중에, 조선민중에 의한, 조선민중을 위한 조선혼의 총체다. 동학은 혁명인 동시에 개벽이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동학, 최시형! 포항 사람이라면 이 위대한 한국 사상가를 더더욱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해월 선생의 삶의 궤적과 동학사상이 포항의 정체성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