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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견습공

등록일 2023-06-25 18:07 게재일 2023-06-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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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만 시인

국어어원사전을 보면 ‘삶’은 ‘불’의 뜻을 가졌다. 같은 어원을 가진 ‘사랑’에 불타는, 뜨거운 같은 불과 관련한 수식이 붙는 것도 그런 연유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물과 불과 공기와 흙 중에서 불을 가장 소중히 하는 불의 문명을 가꿔왔으니 쓰는 말들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불을 강조하다보니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할 행성이 뜨거워 질 정도가 되었다. 유럽, 호주에 이어 캐나다가 불길에 휩싸였다. 사용하는 에너지도 불에 집중되어 있었고 삶도, 사랑도 뜨거워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지구가 과열된 것이다. 열이 나면 호흡이 가빠지고 기침을 하는 것처럼 지구의 안정된 리듬이 깨졌다. 기후변화, 기후혼란은 그런 것이다.

‘화염의 문명’이 실패했다면 물과 공기와 흙을 가지고 더워진 지구를 식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보다 물과 공기와 불과 흙을 잘 다루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 인간이외의 생명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자연을 이용하기에 바빴다. 철학자 마이클 마더는 ‘식물의 사유’(알렙 2015)에서 “21세기의 비극은 우리가 연소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겠다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연소될 수 있는 것들 속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됩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식물생명에서 찾는다. “식물생명은 식물의 영혼이 식물의 신체에 자신을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파괴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관입니다. 이 에너지는 다른 식물, 동물, 인간 존재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습니다.”며 ‘더불어 번성하기’를 주장한다. “식재료, 건축재료, 광합성을 일으키는 식물기계, 자기 복제하는 녹색 물질”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식물과 자연의 ‘고요한 번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다시 ‘자연의 견습공’이 되자고 한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더더욱 빨리 성장하는 식물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막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견습공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안도현시인의 이런 시는 어떤가?

초록 풀잎 하나가/ 옆에 있는 풀잎에게 말을 건다/ 뭐라 뭐라 말을 거니까/ 그 옆에 선 풀잎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풀잎이/ 또 앞에 선 풀잎의 몸을 건드리니까/ 또 그 앞에 선 풀잎의 몸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들끼리/ 한꺼번에 흔들린다/ 초록 풀잎 하나가 뭐라 뭐라 말 한 번 했을 뿐인데/한꺼번에 말이 번진다/ 들판의 풀잎들에게 말이 번져/ 들판은 모두/ 초록이 된다 (안도현 ‘초록풀잎 하나가’전문-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상상 동시집 2023)

이 동시집에는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식물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동시통역하는 동시로 가득하다. ‘팽나무가 오 백년 동안 일해서 만든 그늘’을 펼쳐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인간이외의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며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비인간생명들과 공생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상상하기를 자극’하는 이런 시들을 읽고 나면 나무도 바위도 풀도 뱀도 다람쥐도 사촌쯤 되어있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식물-되기, 동물-되기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더 좋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불을 끄고 지구를 식힐 수 있지 않을까?

평생 바다와 인간의 사이에서 살아오신 동해안 별신굿 보존회 선생님들과 쓰레기매립장에 버려진 고래가 너무 안타까워 고래진혼굿을 한 적이 있다.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할 때 누군가 그랬다. “오늘은 ‘지구식힘굿’을 해서 그런지 바람이 시원합니다.” 그날의 그 사진엔 모두가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겼다. 모두가 불의 문명을 식히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평생 해 온 일을 지금의 시대상황에 맞게 ‘지구식힘굿’으로 말하는 ‘생태적 깨달음’은 예술가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느끼고 감수성의 변화로 이어져 풍어를 기원하는 굿을 ‘지구식힘굿’으로도 변용하는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생겼기에 바다도 좋다는 듯 시원한 바람을 밀어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입으로 인간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식물의 말, 동물의 말, 물의 말, 흙의 말, 바다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입을 빌려주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시인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 읽기는 인간중심주의 한계를 넘어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친척으로 만들어 주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모기약을 쓰지 않고 수건 한 장으로 방안의 모기들을 내쫒는 공생의 공력을 키우려면 생태적 감수성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야 할 것이다. 함께 자연의 견습공이 되어 풀잎들 옆에 같이 서서 뭐라 뭐라 말을 전달하는 것쯤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비 온 뒤 운동장의 풀처럼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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