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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나만의 ‘보물창고’이자 내 문학의 영감을 주는 재료”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3-04-11 20:08 게재일 2023-04-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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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신의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은 김도일 작가.

최근 ‘독특한’ 책 한 권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품집에 수록된 8편의 소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포항을 소재로 삼고 있는 ‘어룡이 놀던 자리’. <사진>

이는 전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일종의 ‘사건’처럼 느껴졌다.

책을 펴들었다. 소재는 ‘포항’으로 단일하지만, 수록된 개별 작품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각기 달랐다.

‘디어 마이 엉클’에서는 한국전쟁이 야기한 비극의 그림자가, ‘관목(貫目)’에선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아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이, ‘불꽃 지다’로 가면 비루한 상황에서도 놓칠 수 없는 인간의 순정한 마음이 기자의 눈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책을 엮어 세상에 내놓은 김도일(49)은 마흔 즈음에 소설 쓰기를 시작한 늦깎이. 흥미롭게도 세상 사람들에게 작가로서의 존재를 알린 첫 소설도 ‘2017년 포항 소재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포항을 ‘씨줄’ 삼아 묵직하고 깊이 있는 역사의식과 인간 본질 탐구를 자신의 문학 속에 빠른 속도로 축적하고 있는 김도일. 제대로 된 그물을 짜기 위해선 튼튼한 씨줄과 날줄 모두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책에서 무시로 감지되는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한 노력’과 지속적 ‘인간 본질 탐구’는 김 작가가 손에 든 ‘날줄’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가에게 늦은 출발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마지막에 가닿을 목적지니까. 소설가와 시인, 화가와 작곡가는 단거리 육상선수가 아닌 마라토너(Marathoner) 같은 존재.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듬직한 몸피와 호방한 목소리를 가진 김도일은 막 출발선을 떠나 5km 지점쯤을 통과하고 있는 마라톤 선수, 아니 소설가다.

지난 주말 오후. 환한 봄빛 아래 푸른 파도 일렁이는 영일대해수욕장 한 카페에서 김도일을 만났다.

무슨 이유로 포항을 문학의 주요 소재로 선택했는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뭔지,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조목조목 물었다. 그의 답변은 소설 속 문장을 닮아 따뜻하고 명쾌했다.

 

마흔에야 펜을 든 ‘늦깎이 작가’

10년간 꺼지지 않는 창작의지로

첫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 출간

학보사 기자·해병대 장교 경험

편향된 시각 균형 맞추기에 도움

경북 동해안 근대 배경으로 한

긴 호흡의 이야기 풀어 내고파

-태어난 곳과 유년을 보낸 지역은.

△1974년 경북 영덕에서 과수원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계속 포항에서 살고 있다.

 

-학창시절엔 어떤 아이였나.

△열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같은 시기에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슬펐지만 내 슬픔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남매끼리 보듬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결속 같은 것이 생겼다. 원래 성격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외향적이어야만 했다. 학우들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지,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대학에선 뭘 공부했고, 어떻게 보냈는지.

△경찰이 되고 싶어 행정학과에 지원했다. 1학년 때 학교 신문사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 전부를 거기에 바쳤다. 학사장교 지원도 학보사 활동을 보장받으면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1996년 광주 5·18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대학생 기자 대표로 두 피고인 뒤에 자리해 재판을 볼 수 있었다. 취재한 것을 전국 대학신문에 보내고, 혼자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은 기억이 있다.

 

-해병대 장교로 예편했다고 들었다.

△1997년 임관해 2003년 대위로 전역했으니 6년을 해병대에 있었다. 낙하산 강하, 헬기 레펠, 사격, 전술훈련은 즐거웠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군인임을 자각하고 군인으로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다. 그런데… 사단 전 병력이 일주일간 골프장에서 토끼풀을 뽑은 적이 있다. 사령관이 골프 치러 오기 전까지 끝내야 하는 임무였다. 작업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라운딩 하던 민간인이 우리를 보며 흘리던 웃음이 아직 기억난다. 해병으로서, 장교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게 전역을 결심한 이유다.

 

-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나.

△10년 전 마흔에 첫 소설을 썼다. 건강했던 몸이 병원을 자주 찾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를 극복하고자 처음에는 에세이를 필사했다. 그러다가 시를 베끼게 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가 소설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소설을 썼는데, 안 흔들리고는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군대 장교’와 ‘소설가’라는 두 존재는 쉽게 매치가 어려운데.

△오히려 군대 경험이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의 균형을 맞추는데 도움이 됐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인간이 극한 환경에서 어떻게 단순화 되는지, 폭압적인 권력에 굴복하고 인간이 그 일부가 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국가와 임무에 헌신하는 선후배 장교들 앞에서 부끄러워진 적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황석영과 현기영도 해병대 출신이다.

-왜 ‘포항’이라는 소재에 천착하는가.

△내가 사는 곳이 이야기가 풍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소설을 쓰기 전부터 가졌다. 그러던 중 첫 작품 응모를 ‘포항 소재 문학상’에 했는데 입상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다. 소설 소재를 찾다보니 묻혀 있기엔 아까운 포항 관련 역사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나만의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억지로 끼워 맞춰 어색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포항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려 한다. 자료를 찾고 공부하는 자체가 너무 재밌다.

 

내가 사는 곳이 이야기가 풍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소설을 쓰기 전부터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첫작품 응모를 ‘포항소재 문학상’에 했는데 입상하게 됐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죠. 소설 소재를 찾다보니 묻혀 있기엔 아까운 포항 관련 역사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다음 작품은 일제강점기 구룡포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해방 후 일본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와 함께 다뤄볼 참입니다.

-첫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를 받아들었을 때 기분은.

△기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감정이 몰려와 당황스러웠다. 그냥 멍했다. 내 안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빠져나간 듯 허탈감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 여파가 몸에 영향을 미쳐 몸살을 지독하게 앓았다. ‘이제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있었고 내 이야기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퍼 눈물도 조금 흘렸다. 한 일주일 후에야 겨우 기뻐할 수 있었다.

 

-책에 수록된 것들 중 한 작품만 독자들에게 권한다면.

△표제작이다. 개발시대 포항의 이면을 압축해 담았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지형, 마을에 대한 향수와 어쩔 수 없이 실향민이 돼야 했던 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썼다. ‘어룡이 놀던 자리’는 포항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소설 속 공간에 살았던 분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도 ‘포항’이 당신 소설의 주요한 소재인가.

△매우 중요하지만 유일한 소재는 아니다. 내가 특징을 가장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를 수 있는 재료가 포항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포항이라는 소재에 맞지 않는데 억지로 끼워 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소재를 찾겠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포항에서 나오는 재료만으로도 충분하다.

작품집 출간 후 모교에서 강연회를 연 김도일 작가.
작품집 출간 후 모교에서 강연회를 연 김도일 작가.

-당신에게 소설이란 어떤 의미인지.

△계속 길을 찾아 헤매고 끊임없이 흔들리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소설 다음으로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소설 또한 이 범주에 들어간다. 아침에 인사하고 헤어진 이를 무사한 모습으로 저녁에 다시 마주하는 것, 따뜻한 물로 씻은 후 밝은 등 아래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 내일의 노동을 위해 낡은 침대에 몸을 누이는 것, 이 모든 일상이 내겐 귀하다.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소설을 쓰고 있으면 좋겠다. 외국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것에도 도전하고 싶다. 10년 후면 직장에서도 정년이 다 돼 갈 텐데 소설과 번역을 번갈아 한다면 퇴직 후의 삶이 재밌을 것 같다. 이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뭔가.

△일제강점기 구룡포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해방 후 일본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와 함께 다뤄보고자 한다. 이들의 상황은 정반대지만 양쪽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다. 현재 자료조사 중인데 이 단계에서부터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리고, 언젠가는 경북 동해안 일대의 근대를 배경으로 최소 3권 이상 되는 분량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풀어내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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