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유기농 마스크팩·대체육 오랜 노력 끝에 만들었죠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3-03-28 18:07 게재일 2023-03-29 16면
스크랩버튼
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br/>농업회사법인 하이청 박해성 대표
자신이 만든 유기농 마스크 팩과 대체육을 들고 환하게 웃는 박해성 대표. /사진=이용선 기자
자신이 만든 유기농 마스크 팩과 대체육을 들고 환하게 웃는 박해성 대표. /사진=이용선 기자

견인불발(堅忍不拔)과 기호지세(騎虎之勢).

여성 사업가를 지칭하는 단어로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농업회사 하이청 박해성(57) 대표를 만나며 떠올린 이 두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예기치 않은 불행과 그 불행을 넘어서려는 그녀의 노력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서울에서 태어나 별다른 부침(浮沈) 없이 살아온 박 대표는 20대 후반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남편의 치료를 위해 경상북도를 처음으로 찾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부군의 병이 호전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고난이 박 대표를 찾아왔다. 자기가 여성 암에 걸린 것.

낯선 포항에서 문구점과 레스토랑, 임대업 등을 하던 그녀는 “자연이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말에 기대 생전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 봐라. 육체적으로 힘든 농사일이 가슴과 자궁 안으로 번져가던 암세포의 증식을 거짓말처럼 막아냈다. 그때 든 생각이 있었다.

‘흙을 만지며 사는 게 앞으로의 내 삶이 될 수도 있겠구나.’

결심은 바로 실행으로 이어졌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으로 들어가 땅을 사고 거기에 깨와 감자, 무 등을 심기 시작한 것.

마흔을 넘겨 늦깎이 농사꾼이 된 박 대표는 자신을 치료해준 고마운 땅이니 농약 없이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가꾸게 된다. 처음엔 실패와 고생이 없을 수 없었다.

새벽 5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에 열중했지만, 수확량은 다른 농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당연지사 거기서 이익이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러나,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법.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땀과 눈물을 쏟아 부은 땅은 얼마 전부터 박해성 대표에게 ‘은혜’를 갚기 시작했다.

하이청이 공력을 쏟아 부어 만든 식물성 콜라겐이 함유된 ‘금화규 마스크 팩’은 포항의 대형 뷰티센터 이용자들에게 호평 받았고, 21세기형 환경 친화제품이라 할 대체육 ‘도시새댁 돌미역 네모땡’은 꼼꼼하고 까다로운 평가 과정을 무사히 통과해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에 입점하게 된 것.

사실 이전에도 박 대표의 회사는 작지 않은 사업성과를 올린 바 있다. 하이청은 포항에서 미국으로 처음 무를 수출했고, 저 멀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도 시래기를 수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17년 전 치유가 힘든 암을 앓았던 조그만 여성이 고통과 절망에 굴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배경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앞서 언급한 견인불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를, 기호지세는 ‘달려온 길을 더 정열적으로 뛰어가는 힘’을 의미한다.

지난주 목요일 오후. 본사 편집국에서 박해성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넘쳐나는 에너지가 주위 사방을 압도하는 그녀와 기자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남편 치료 위해 찾은 낯선 포항서

농사 지으며 본인의 암도 이겨내

‘흙 만지는 게 삶이 될 수 있겠구나’

그 길로 유기농 농사 지은지 10년

땀과 눈물 쏟아내 수확한 작물로

다양한 제품 개발 백화점 입점도

이익만 쫓아서는 오래가지 못해

지역사회 일원, 봉사하며 살고파

농업회사법인 하이청 공장 전경.
농업회사법인 하이청 공장 전경.

-서울에서 포항으로 온 시기와 이주 이유는.

△1995년이다. 남편이 아팠다. 경주에 사는 맹인 치료사를 찾아왔다. 금방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 머물렀다. 지인이 문구용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해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포항에 정착하게 됐다.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06년쯤이다. 가슴에 암이 생겼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암에 걸리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나. 나 역시 비슷한 심경이었다. 처음엔 암에 좋다는 와송(瓦松·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을 키웠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암이 호전됐다. 자궁에 생긴 혹도 사라졌다. 아마도 흙이 주는 에너지 덕분 아니었을까.

-무를 재배해 해외 수출도 했다던데.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어 미국과 캐나다로 무차와 무말랭이, 시래기 등을 보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방식으로 키워낸 농작물이었다. 환자인 내가 먹어도 안심할 수 있는 무와 깨, 감자를 키우고 싶었다. 또한, 기계면에서 함께 농사짓는 동네 어르신들의 판로도 열어주려 했다.

직원과 함께 농장을 둘러보는 박 대표.
직원과 함께 농장을 둘러보는 박 대표.

-농약 없이 농사짓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맞다. 새벽부터 나와 하루 종일 잡초를 뽑는 것보다 간단하게 제초제 한 번 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내 병을 치유해준 땅을 위해서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7~8년가량 되니 땅도 ‘농약 없는 농사’에 적응하는 것 같다. 이제 내가 사는 동네에도 유기농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사실 이런 게 생활 속 환경보호의 실천 아닐까.

-하이청이 생산한 유기농 작물로 만든 상품은 어떤 게 있나.

△최근엔 금화규에서 추출한 식물성 콜라겐으로 마스크 팩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금화규는 천연 에스트로겐이 함유돼 염증과 노화를 막아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미 포항에서 운영되는 뷰티센터 인디자인페이스의 다수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본격적인 마케팅과 판로 확장을 위해 얼마 전엔 ‘인디자인페이스 유니’라는 별도 법인도 만들었다.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하이청 농장.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하이청 농장.

-고기 없이 고기 맛을 내는 대체육도 개발했다고 들었다.

△알다시피 소, 돼지, 양을 키우려면 수질 오염과 메탄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걱정해야 한다. 대체육 생산은 건강은 물론, 환경보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새로운 사업이다. 하이청은 기존 대체육과 전혀 다른 식감을 가진 제품을 만들었다.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무와 청정 바다에서 해녀가 채취한 포항 돌미역을 접목시킨 결과다. 여기에 자연산 해조류에서 추출한 ‘아미노산 복합체’를 더했더니 맛 또한 좋아졌다. 곧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소비자의 직접 평가를 받는 일만 남았다.

-사업의 다각화와 확장도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가 만든 시래기를 맛보고 격려해준 미국과 두바이 교민들을 잊을 수 없다. 만드는 사람의 수고를 가장 잘 아는 건 소비자다. 그러니, 먹는 걸 생산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는 차(茶)로 마실 수도 있고, 가루로 만들어 수프에 장식용으로 뿌리는 것도 가능한 시래기 가공품이 완성 단계에 있다. 앞으로는 유럽 수출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농사를 통해 암을 이겨내고, 유기농 농산물 수출과 마스크 팩, 대체육 생산으로 작지 않은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성실한 농사꾼으로, 이웃과 더불어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변하지 않고 지켜갈 사업의 원칙이 있다면.

△이익만 생각한다면 오래 가지 못한다. 좋은 차와 커다란 집만으로는 완전한 행복을 만들 수 없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봉사하는 삶을 지향하고자 한다. 평생 힘든 육체노동을 한 탓에 허리가 굽은 동네 할머니들을 보며 내가 기계면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박해성 대표가 생산 설비를 살피고 있다.
박해성 대표가 생산 설비를 살피고 있다.

-만약 크게 성공한다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뭘 할 생각인가.

△운전을 못하는 노인이 시골에서 병원에 다니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 종일 진료실에서 기다렸다가 짧은 시간 물리치료를 받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료 셔틀버스 운행은 그분들을 돕는 방법 중 하나다. 농사를 하며 생긴 질병을 치료할 땐 지원도 해주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더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농촌 노인을 위한 전문병원도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농사를 통해 암을 이겨내고, 유기농 농산물 수출과 마스크 팩, 대체육 생산으로 작지 않은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성실한 농사꾼으로, 이웃과 더불어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남들은 ‘뭐 하러 그렇게 바쁘게 사냐’ ‘왜 힘들게 자꾸 새로운 사업을 벌이느냐’고 하는데, 그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공장엔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놀러 온다. 농사일로 일생을 보낸 그분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