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에서 몇 년이면 자라는 크기를 고지대에 사는 가문비나무는 200~300년 넘는 세월 동안 천천히 자란다. 어두운 산중에 자라면서 위쪽 가지들은 햇빛을 향해 나아가고 아래쪽 가지들은 떨어뜨리며 커 나간다. 그래서 울림이 좋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승효상의 건축은 영성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솔스케이프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 옛집에 항상 그런 부류의 영성에 관련된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 하나에도 성주신이 산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가 착공식도 하고 상량식도 하고 준공식 하는 게 전부 다 그 집과 더불어 살게 되는 신에 대한 어떤 감사와 소원이란 것이다.
성경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칭찬한다. 그 말씀대로 가문비나무 같은 사람이 지은 교회가 가까이 있었다. 하양의 무학로 교회이다.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이 지은 15평짜리 자그마한 건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의 자택인 수졸당이다. 수졸당의 의미는 “졸렬함을 지키는 집”이다.
이 수졸당이 그의 대표작인 이유는 그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구현한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빈자의 미학은 “호화로운 건축에서 허황되고 거짓스러운 삶이 만들어지기 쉽고, 초라한 건축에서 바르고 올곧은 심성이 길러지기가 더 쉽다”라는 것이다. 그의 선생 김수근의 사후에 김수근 건축이 아닌 자신의 건축을 하기 위해서 고민하다가 금호동 달동네에 갔을때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건축적 아이디어에서 영향을 받아 빈자의 미학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대로 길을 따라 골목에 들어서니 골목 끝에 붉은 나지막하게 엎드린 건물이 보였다. 동행한 친구에게 교회가 보인다고 해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교회는 키가 작아도 멀리서 금방 눈에 뜨인다. 십자가 때문이다. 그 십자가가 무학로 교회에는 보이지 않아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빈자의 미학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도 수줍게 숨겼다. 하양, 우리말로 ‘물볕’이라는 뜻처럼 마당에 물을 담아 놓아 하늘을 들어 앉혔다. 화려한 정원수나 장식돌은 보이지 않는다. 그 물길 따라 좁은 통로를 걸어 입구를 찾았다.
찾아야만 보이는 문이다. 힘껏 몸을 써서 밀자 내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들어와 신의 은총이 내려오는 듯한 그런 분위기는 없다. 어둑어둑한 실내, 설교단 쪽의 천장에서 바깥의 빛이 들어온다. 천창 하나가 창문의 전부다. 그 분위기에 우리 일행은 저절로 숙연해졌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게 만든다.
실내 장식은 보일 듯 말듯 가느다란 십자가 하나뿐이다. 어릴 적 시골 동네 작은 예배당은 늘 열려 있었다. 교회 안에 값나가는 물건은 오르간 하나뿐이었다. 친구들과 거기 앉아 젓가락 행진곡을 서툴게 연주하며 놀았다. 야단치는 어른도 없어서 늘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요즘의 교회들은 대부분 잠겨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학로 교회는 어린 시절 그 교회처럼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이 교회 맞은편에는 승효상 건축가의 아들이 설계해 지은 문화시설까지 들어서면서 현대인들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문화거리로 탈바꿈했다. 다방물볕과 책방과 강의실과 전시실이 함께 있다. ‘승승 로드’라는 이름으로 입소문을 타고 기독교인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건축 전공자, 여행자 등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기도하고 위안을 얻는 성소가 됐다. 아무때나 찾아가 위로받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