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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戀書)를 띄우는 마음으로 출간한 ‘포항 5부작’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3-01-31 19:13 게재일 2023-02-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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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br/>‘지역학 연구자’로 성장 중인 김도형 씨<br/>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포항의 해양문화’<br/>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1권과 2권<br/> ‘포항-빛, 물, 철이 빚어낸 천일야화의 땅’ 등<br/> ‘포항 5부작’ 으로 불릴 책들 출간 과정 주도<br/>고향에 대한 사랑·지극한 관심 기록 결실로
2년 6개월 동안 ‘포항 5부작’으로 명명해도 좋을 책들을 기획출간한 김도형 씨.
2년 6개월 동안 ‘포항 5부작’으로 명명해도 좋을 책들을 기획출간한 김도형 씨.

몇몇 사람들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향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한다.

현대도시는 태어나고 자란 공간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유소년 시절 ‘기억’과 ‘그리움’은 대부분 고향과 연관돼 있다. 이는 동서와 고금이 다르지 않을 터.

지지난해 시작해 최근까지 포항과 관련된 책 5권의 기획·출간에 깊숙이 관여한 사람이 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내 고향 포항’에 대한 애정을 무시로 드러내는 김도형(55)씨다.

경희대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출판 편집자 이력이 있는 그는 재작년 하반기부터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포항의 해양문화’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1권과 2권, ‘포항-빛, 물, 철이 빚어낸 천일야화의 땅’이 출간되는 과정을 주도했다.

‘포항 5부작’으로 불러도 재론의 여지없는 이 책들은 김도형 씨의 고향 사랑이 지역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기록 욕구로 진화한 사례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좋은 책을 만들어냄으로써 포항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그는 “출간은 여러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진, 그림과 함께 포항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시간을 쪼개 자신의 고향이 지닌 진면목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으니, 그는 이제 ‘지역학 연구자’로 중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짙푸른 포항의 겨울 바다가 배경으로 출렁이는 조그만 카페에서 김도형 씨를 만났다. 아래 그날 오간 대화를 요약해 옮긴다.

 

아름다운 자연과 흥미로운 역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곳이 포항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쉽고 편안하게 포항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을 고민했다. 근본적으로 ‘포항-빛, 물, 철이 빚어낸 천일야화의 땅’ 은 내가 포항을 공부하며 쓴 노트이자, 포항에 보내는 연애편지다.

-포항에서 보낸 유년은 어땠나.

△중앙초등학교(지금의 북구청사) 근처에서 태어났는데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초등학생 시절 남빈동 가구상 거리에 살았던 기억은 점점이 남아 있다. 집 근처에 제일교회가 있었고, 길 건너편에 죽도시장이 있었다. 붉은 벽돌에 푸른 담쟁이가 드리워진 고색창연한 예배당과 시끌벅적한 장터는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이를테면 나는 성(聖)과 속(俗)의 한가운데서 유년을 보냈던 셈이다. 당시 수레를 끌고 가던 말들의 모습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포항역에서 짐을 실은 마차가 동빈내항 쪽으로 이동했는데, “따가닥 따가닥” 하는 말발굽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포항 사람들만의 기질이 있다면.

△학생이고 어른이고 간에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분명한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있을 때 가장 그리웠던 풍경은.

△어릴 때부터 동빈내항과 영일만을 보고 살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바다를 못 보니 갑갑했다. 그 때문에 잠시 향수병을 겪었던 것 같다. 청년 시절 고속버스를 타고 해도동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면 환여동 집까지 걸어갔다. 해도동에서 죽도시장, 동빈내항, 영일대해수욕장을 거쳐 환여동까지. 아마 본능적으로 그 길을 걸었던 것 같다.

호미곶 구만리 보리밭 풍경.
호미곶 구만리 보리밭 풍경.

-기억 속에 남은 학창시절 스승은 누구인가.

△소설가 조해일 선생이 대학 은사다. 석사 과정 때 연구실에서 선생의 삶과 문학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학부 시절은 어수선했고, 석사 시절은 선생의 말씀을 듣는 게 공부의 거의 전부였다. 내게 기대를 하셨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스럽다.

-포항으로 돌아온 건 언제이고, 귀향의 이유는.

△1999년 예담출판사 편집장을 맡았다. 그해 5월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출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같은 해 여름 포항에 일자리가 생겨 귀향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생겨 미련 없이 고향으로 왔다. 2000년엔 포항에 있으면서 ‘이중섭, 그대에게 가는 길’의 출간 작업을 했다. 다행히 그 책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년 시절 본 포항과 지금의 포항은 뭐가 변했고, 어떤 게 여전한지.

△큰 변화라면 원도심은 쇠락했고, 부도심은 급격하게 팽창한 것이다. 원도심의 쇠락은 한국 도시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안타깝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친구들로부터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정도로 도시 모습이 급변했다. 영일만 풍경도 많이 바뀌었지만 바다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 바다가 그대로 있어줘 너무 고맙다.

어두운 바다를 밝히는 포항 호미곶 등대.
어두운 바다를 밝히는 포항 호미곶 등대.

-얼마 전 ‘포항-빛, 물, 철이 빚어낸 천일야화의 땅’을 출간했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흥미로운 역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곳이 포항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쉽고 편안하게 포항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을 고민했다. 근본적으로 이 책은 내가 포항을 공부하며 쓴 노트이자, 포항에 보내는 연애편지다.

 

-출간 과정을 간략히 요약한다면.

△취재와 집필에 일 년 이상 걸렸다. 이런 작업은 좋은 자료를 얼마나 섭렵하는가에 성패가 달렸다.

다행히 근래 포항과 관련된 좋은 자료들이 꽤 나왔다. 포항지역학연구회에서 포항지역학총서를 열 권 만들었고, 김진홍 선생이 1935년 발간된 ‘포항지(浦項誌)’에 주해(註解)를 붙인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을 냈다. 이런 책들이 집필 과정에 도움이 됐다.

내가 쓴 책엔 144장의 사진이 실렸다. 한마디 불평 없이 까다로운 촬영 부탁을 들어준 사진작가 김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작가 김진호도 귀한 자료사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독자와 지인들의 반응은.

△“포항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알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좋은 방안이 없겠냐”는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선후배들은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는 말로 격려했다. 솔직히 이 책은 포항 시민들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구상했다.

-포항을 찾는 여행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은.

△호미곶에 있는 구만리 보리밭이다. 해 질 녘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영일만 너머 비학산 일몰을 바라본 후, 밤바다에 맑고 투명한 빛을 뿌리는 등대를 찾아보길 권한다. 더불어 1948년에 서울 생활을 접고 포항으로 온 한흑구 선생의 삶과 문학을 살펴봤으면 한다. 한 선생은 맑고 깊은 영성의 담지자다. 생전에 수필집 ‘동해산문’과 ‘인생산문’을 냈는데, 곧 이 책이 복간된다. 어쩌다 보니 내가 편집을 맡았다. 깊이 있는 철학적 수필집이니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한다.

-단답형 질문이다. 당신에게 포항이란.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은, 천일야화의 땅이다.

포항 동빈내항의 설경.
포항 동빈내항의 설경.

-향후 다루고 싶은 포항 관련 주제는.

△포항은 204km의 해안선을 접하고 있는 해양도시다. 그런 까닭에 바다와 얽혀 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때문에 ‘포항의 해양문화’를 냈다. 앞으로도 해양 관련 이야기를 발굴해 정리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뜻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2023년 계획은.

△3월까지 한흑구 선생의 수필집 편집을 마무리하고,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3’도 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한흑구 선생은 “포항은 한국 속의 뉴욕 같았다”고 말했다. 일본, 만주 등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이 살았기에 섞여 살기가 힘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개방성에 매력을 느껴 1979년 작고할 때까지 포항에서 살지 않았나 싶다. 바다와 개방성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포항이 가진 매력을 잘 살려 나가면 더 멋있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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