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진심으로 경주를 사랑한 윤경렬의 흔적을 찾아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3-01-29 19:19 게재일 2023-01-30 12면
스크랩버튼
고청 윤경렬 기념사업회 입구.
수막새. 신라인의 미소를 닮은 사람이 있다. 고청 윤경렬(1916~1999) 선생. 타지에서 태어났으나 경주 사람보다 경주를 사랑하고 아꼈던 선생의 기념관이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생전 선생의 인왕동 자택 옆에 위치해 있다. 경주국립박물관 뒤편으로 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10여 년 전 지인들과 방문했을 때 보았던 큰 감나무는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자 해설사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내부에는 선생의 유품인 작품들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 큰 물난리로 자택에 보관 중이던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자료들은 시간이 생명이다. 공적으로 보존 관리 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입구에는 기증을 받아 판매 중인 윤경렬 선생 자서전부터 선생이 쓴 남산 관련 책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절판된 서적들로 판매금액은 기념관 운영 기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서자 한국의 산천에서 보이는 강렬하면서도 알록달록한 색의 인형들이 눈길을 끌었다. 곱게 땋은 머리 아래 놓인 빨간 댕기, 독을 머리에 인 여인이 입고 있는 여름 나뭇잎 색 치마, 금방이라도 돌아설 듯 춤을 추는 무희의 옷, 그 옆에 선 처녀의 새파란 물빛 치마까지. ‘색이 참 곱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이는 것이리라.

일제강점기, 선생이 본 일본인 작가의 조선인 인형들은 잘 만들어졌으나 표정이 어둡고 힘들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밝고 행복한 모습의 조선인 인형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인형 장인에게 제작 기술을 배워왔다. 귀국 후 1943년 개성에서 고려인형사를 열었다. 이 시기 고유섭, 오지호 선생들과 교류했으며 같은 때 만난 고유섭 개성박물관장의 권유로 경주에 자리 잡은 1949년 경주에서 한국 풍속 인형 연구소 고청사를 설립한다.

이후 1953년 경주 출신 중장년층들의 추억 속 어린이 박물관도 문을 열게 된다. 곱고 귀여운 인형들을 사이로 반가사유상이 보인다. 윤경렬 선생을 기리는 고청상에 반가사유상 모형이 주어진다고 하니 더 특별해 보였다. 작품들과 글로 된 자료들 사이로 선생과 가족들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사진 속 선생은 어린아이가 오매불망 원하던 사탕을 갓 얻었을 때 표정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자리한 여인. ‘순이’로 부르며 평생의 지기로 여긴 아내 마순금 여사. 그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선생은 큰 복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업적에 비해 많지 않게 느껴지는 자료들을 지나니 출구 쪽에 보살좌상이 놓여있다. 조명 탓일까.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살상의 새하얀 피부는 마치 빛을 뿜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신비로움에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았다.

윤경렬 선생의 경주에 대한 사랑과 업적이야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없겠으나 그의 인생이 담긴 전시관을 관람하는 내내 따라다니던 생각이 있다. 선생이 다녀간 신라에서의 소풍은 행복했으리라. 참 부럽고 고마운 ‘경주’사람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