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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앗아가는 살인자, 우울증

등록일 2023-01-29 17:40 게재일 2023-01-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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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2023년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어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하게 되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희망을 노래할 수 없다. 다시는 희망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절망이 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

대부분의 극단적인 선택 시도자들은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갈등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 없음을 느낄 때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매년 약 100만 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지난 45년간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 선택률이 60%나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극단적 선택률 1위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21년 한해 1만3천35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는 하루 평균 37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39분마다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특히 10∼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극단적 선택이다. 또 1990년 연간 3천157명의 극단적 선택자가 30여년 만에 무려 4배 이상 급증했다.

국내외 연구를 종합해보면 모든 극단적 선택자의 약 80%가 생물·심리·사회경제적인 요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울증과 연관돼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우울증 환자의 약 67%에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며 약 15%가 궁극적으로는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다고 보고돼 있다. 특히, 우울증 첫 3개월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률이 50∼70배로 가장 높아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해야 극단적 선택을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극단적 선택률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정신건강에 대한 무지(無知)와 사회문화적 편견(偏見), 정신건강에 대한 국가,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不在)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6명 가량이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 얕은 ‘정신건강 문맹(文盲)’으로 나타났다. 또 정신질환 치료 등에 대한 오해가 많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개인이 나약하거나 의지가 부족해 생긴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 우울증 환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신체 호르몬인 인슐린의 기능이 잘못되면 당뇨병이 되듯,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우울증 환자들의 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특히 세로토닌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는 우울증이 본인의 의지박약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하나의 질병임을 의미한다.

우울증은 현재 유병률이 날로 증가하는 질병 중 하나로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하버드대의 연구에도 우울증이 사망과 질병에 의한 장애를 동시에 감안한 질병 부담 측면에서 그 장애도가 전체 질병 중에서 2020년에는 2위다.

오는 2030년에는 1위 질병으로 예측되면서 우울증의 만연(蔓延)에 대한 대비를 강력하게 요청받고 있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15%로 우리나라 국민의 약 750만명 정도가 평생에 한번 이상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으로 ‘마음의 감기’로 알려지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자 치료가 매우 잘 되는 병이지만, 방치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매우 무서운 질병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3분의 2 이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우울증을 효율적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 데는 사회문화적 편견이 너무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편견의 장벽이 우울증의 치료를 가로막고 있고, 우리 사회의 높은 극단적 선택률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난 2020년 우울감·우울증 유병률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2∼8배 이상 높아졌다. 엄청난 증가세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욱 걱정된다. 지난 2020년 우울감·우울증 유병률이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이다.

이제 우울증은 더 이상 한 개인의 성격의 문제로 몰아서는 안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중요 질환이자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질병으로 인식돼야 한다.

또 우울증의 문제는 국가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는 의학적 측면뿐 아니라 국가 사회적으로도 매우 절실한 문제다. 우울증을 피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면 당당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라. 몸이 힘들면 감기에 걸리고 마음이 힘들면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감기에 걸리면 치료를 받듯,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이는 극단적 선택 풍조를 예방하는데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되는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치료이다. 의학계는 전문적인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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