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풍경이 절경인 월지와 동궁의 치미가 유리 지붕 위에 얹혔다. 옛 안압지였던 동궁과 월지에 우리 조상들이 최초로 화초와 진금이수 즉 진귀하고 기이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문무왕 14년 삼국사기 기록과 신라의 관직명에 새 이름을 사용했다는 등 경주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해,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던 동궁과 월지를 지금 이곳 경주 동궁원에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보문관광단지 입구에 자리한다.
동궁(東宮)은 신라왕궁의 별궁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곳으로 ‘경주 동궁원’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찬란했던 영광을 다시 이곳에서 재현하고자 시민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경주의 역사적 배경을 스토리텔링해 ‘동궁식물원’과 새전문 동물원인 ‘경주버드파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예전부터 딱 떨어진 이름짓기에 능한 민족이다. 배고픈 사람들 눈에 고슬고슬한 밥이 수북하게 떠 있는 듯한 이팝나무가 그렇고, 가지를 꺾으면 노오란 진액이 나는 풀꽃에는 갓난아기의 기저귀에 노오랗게 젖 내음이 나는 똥을 누는 아기를 떠올려 애기똥풀이란 이름을 만들어줬다.
식물원 입구에 들어서니 겨울인데도 푸른 잎으로 가득했다.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미인수, 여인초 같이 여성성을 부여한 나무들이 많았다. 미인수는 이름답게 쭉 뻗은 수형에 줄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병 모양으로 변하며 원뿔 모양의 가시로 덮인다. 꽃은 분홍빛으로 매우 화려하고, 씨앗은 쿠션을 만드는 명주 솜 같은 털로 감싸고 있다. 씨는 오일(식용, 산업용), 줄기는 카누, 종이, 로프를 만드는데 쓰이니 가족에게 꼭 필요한 우리네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한다. 소시지 모양의 열매를 맺는 소시지나무, 미키마우스 얼굴모양의 열매를 달아서 미키마우스트리, 잘린 자리에서 용의 피같은 액이 나온다 해서 용혈수, 몸피가 곤봉처럼 생겨 곤봉야자, 주병야자, 박쥐처럼 나무에 붙어 자라는 박쥐란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식물들이 한 곳에 모였다.
물소리가 졸졸 나는가 싶은 곳에 수생식물과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그 옆에 폭포까지 시원하게 쏟아진다. 산책로가 조금씩 경사가 지더니 잎이 큰 식물들을 위에서 전망하며 보라고 공중산책로까지 만들어놓았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 보이지 않던 모습까지 관찰하게 만든다.
사람보다 이 지구에 먼저 태어났을 나무, 그래서인지 생각이 깊다. 건조한 땅에 자라기 위해 뿌리를 항아리처럼 넓게 만들어 물을 저장한 덕구리란, 큰 꽃에 시체 냄새를 풍겨 곤충을 유인하는 시체꽃, 파리 같은 녀석들을 잎을 닫아 천천히 소화 시키고 남은 뼈는 잎을 열어 날려 보내는 파리지옥, 현명한 나무나 풀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사람은 자신들이 먹기 위해 벼와 보리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유목민이었던 사람들을 정착하게 만든 건 정작 벼와 보리였다. 우리가 식물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생각 깊은 식물에게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