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매출 1조원이 넘는 대구지역 기업 대표와 통화를 했다. 그 기업의 에너지 절감에 대해 조언을 할 겸해서 만나자고 했더니 본인은 에너지 절감 분야는 별 관심이 없다면서 간단히 거절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오랫동안 에너지 절감에 대한 대표적 사례로 들 만큼 많은 양의 절감이 가능한 대학에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제안을 한 것이 보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근 대구의 상위 몇%만 산다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아파트 에너지 절감에 대해 협의한 적이 있다. 그 소장은 한마디로 손사래를 쳤다. “전기요금 한 달에 100만 원, 200만 원도 괜찮으니 성가시게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게 이 아파트 주민들입니다. 몇 푼 요금 절감을 위해 괜히 소란을 피울 수 없습니다.” 에너지 절감에 대해 이야기조차 꺼내지 말라는 얘기다.
연말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경북매일신문 4월 17일 자에 “어디서든 전기 30% 절감 가능하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를 아끼고 제대로 쓰는 것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연료(the First Fuel)’”라고 정의한 것을 되살려 본다. 우리가 관심만 갖고 노력만 기울이면 에너지 효율화야말로 가장 싸고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화’는 에너지 안보, 친환경, 경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유일한 에너지로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서는 1KW당 29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원자력 65원, 석탄발전 79원, 신재생에너지 125원이 드는 발전단가와 비교하면 엄청 값싸다.
IEA는 에너지 효율화를 두고 탄소중립 측면에서도 신재생에너지나 다른 어떤 청정에너지보다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했다. 특히 원자력 발전을 제외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0%를 훌쩍 넘는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에너지 효율화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필자가 ‘RE100 실천 중소기업도 예외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8월 1일자에 쓴 칼럼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공장에서 RE100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낭비되고 과소비되는 30% 정도의 에너지 절감부터 하면 RE100 달성이 크게 어렵지 않다.
지난 5월 29일자에 쓴 “왜 선진국형 절전이 어려운지”에 대한 칼럼을 다시 읽어보았다. 에너지 절감문제를 정리해 보면, 첫째 에너지 과소비와 에너지 낭비는 후진국형 증상이며, 국제적 현상이다. 후진국 어디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에너지를 물 쓰듯 하는 것이 후진국에서는 흉이 아니고 자기 과시이기조차 하다. 그래서 ‘에너지 절감’과 ‘에너지 효율화’는 선진국형이며 일류국가 여부의 척도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제 소득은 비록 3만 달러가 넘었으나 에너지 절감은 아직 힘들다.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의 대표가 에너지 절감은 관심 밖의 일이고, 자금에 쪼달린다는 지방 대학이 2억 원이 넘는 돈이 절감된다는데 고려조차도 하지 않으려 하고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일부 시민들은 에너지 절감을 남의 나라 일 보듯이 하는 실정이다.
에너지 효율화 사업이 힘든 두번째 이유는 전기 전공자들의 편협한 아집 때문이다. 각종 전기, 전자제품들은 점점 더 고효율, 초절전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는 시대다. 그런데 건축설계시 전기설계는 점점 더 과도하게 설계를 한다. 에너지 낭비요소가 많으니 효율화를 하자고 하면 전기를 담당하는 전기공학전공 전기기사들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라는 반응을 보인다.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과도하게 설비가 되어있으니 적절하게 조정해서 합리적으로 고치자는 제안조차도 전기 담당자들에게 부딪히면 넘지 못할 절벽이 된다.
에너지 효율화는 곧 학교나 공장, 아파트, 빌딩 등에 ‘무형의 발전소’를 하나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만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화야말로 일류국가로 가는 국민 의식 개혁 실천운동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최근 조선일보에서 7~8회에 걸쳐 에너지 낭비 사례를 고발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특집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선진국인 영국의 런던, 일본의 도쿄, 독일 등과 한국의 서울을 비교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미국이 선진국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생겨난 새로운 직종이 ‘절감(saving) 분야’라는 얘기를 지난 4월 17일 자 칼럼에 쓴 바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면 이제 국민 모두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앞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일상에서 불요불급한 것을 추구하거나 낭비요소가 있다면 바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게는 비록 넘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더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 그렇게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필자는 가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될 자격이 있는가?’, ‘풍요롭다고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