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닭실마을의 안동 권씨 석천 권래(權萊)의 시청비 였다가 석전 성로(成輅)의 비첩으로 10여 년 살았고 전라도 등지에서 기녀를 했다. 설죽의 이름은 얼현(孼玄)이고 자호는 취죽, 설창, 월련, 취선 등이다.
설죽은 어깨너머로 문장과 한시 기법을 터득하고 천부적 문학 역량과 감수성으로 많은 한시를 남겼다. 재주와 미모를 겸비한 호방한 성격이었다. 명산대천에 노닐며 시대적 아픔과 서러움, 아쉬움이 담긴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아래는 그중 하나다.
적막한 서호의 초당문 닫혔고
주인 잃은 봄 누각 벽도향만 흩날리네
푸른 산 어디에 호걸스런 뼈를 묻으셨나요
무심한 강물만 말없이 흘러가네요.
또한, 설죽은 풍류의 여인으로 살면서도 고향의 향수와 혈육을 그리워하는 시를 여럿 남기기도 했다. 고향 봉화 유곡은 미천한 신분인 자신에게 재주를 아껴 키워준 고마운 분들이 있고,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땅이기에 향수의 시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설죽은 당대 여류시인들이 남긴 작품이 황진이 한시 8편, 매창이 남긴 한시가 58편임에 비해 적은 분량이 아닌 167수의 한시를 남겼다.
석전과의 연정으로 시작해 다양한 인물, 문인들과 폭넓은 교우를 하며 시를 지었다. 그녀의 시에는 당대를 살던 여인들의 섬세한 내면의 아픔과 서러움, 애환의 정서가 담겨 있다.
기녀의 삶을 한탄하는 속내를 드러내며 “주렴과 등불 긴 밤을 짝했고, 화로의 남은 연기 향기처럼 피어오르네, 평생 한스럽긴 청루객에게 몸 맡겨, 울며 지내는 제 가슴만 타요”라고 생애가 슬픈 여인의 아픔을 표현했다.
설죽은 희귀본능에 따라 어머니 품속 같고 꿈에도 그리던 봉화 유곡 닭실마을로 만년에 돌아왔다. 한양,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객지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조용히 생을 마쳤다고 한다.
봉화가 배출한 걸출한 여류시인 설죽을 기리기 위해 ‘설죽예술제’가 지난달 18일 열렸다. 시문학 세미나, 설죽 시낭송회, 설죽 시집 출간 등 문화사업도 진행됐다. 황진이, 매창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기녀 시인 설죽에 관한 연구와 스토리텔링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봉화의 문화콘텐츠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류중천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