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숲길·물길 따라 퇴계가 사랑한 풍경 속으로

봉화=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등록일 2022-10-06 18:17 게재일 2022-10-07 14면
스크랩버튼
태고의 신비 간직한     봉화 청량산
청량산도립공원 청량산 전경.
청량산도립공원 청량산 전경.

높은 산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경상북도 봉화는 이름처럼 맑은 청량산이 커다란 품을 펼치는 고장이다. 청량산 깊은 골짜기마다 이름난 고찰을 품고 있고,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글을 읽으며 지냈던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붉은빛이 물드는 숲길 따라 물길 따라 봉화의 청량산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경북도립공원·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산천 아름다움 더불어 역사가치 인정받아

활짝 핀 꽃 안의 꽃술처럼 자리잡은 청량사

세월 견딘 ‘삼각우송’에 얽힌 설화 흥미로워

 

△12개 봉우리와 27개 사찰 품은 청량산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태백산맥 줄기에 솟아 있는 청량산은 자그마한 금강,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를 만큼 봉우리마다 수려한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1982년 경상북도립공원으로,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돼 산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청량산에는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자소봉, 금탑봉, 경일봉, 축융봉 등 12개의 봉우리(육육봉)가 연꽃잎처럼 산을 두른다. 봉마다 학소대, 금강대, 어풍대, 원효대, 반야대, 의상대, 밀성대 등의 대(臺)가 있다. 27개의 사찰과 암자 터도 있다.

청량산은 신라시대에 높은 봉우리의 이름을 의상봉, 보살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이라 부를 만큼 불교문화의 흔적이 가득했다.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 중종 39년(1544), 당시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다녀간 뒤 불교식 이름의 열두 봉우리를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시절에 따라 불가의 산은 유가의 산이 됐다.

청량산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퇴계 이황을 빼놓을 수 없다. 퇴계는 어린 시절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다. 안동의 도산서당에서 제자를 가르치면서도 틈틈이 산을 찾았다. 서당을 세울 때 청량산과 현재의 도산서원 자리 중, ‘어디에 서당을 지을 것인가’ 고민할 만큼 청량산을 사랑했다. 퇴계의 시조 ‘청량산가(淸凉山歌)’의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는 구절에서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져 더럽혀질까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청량사 경내 불상.
청량사 경내 불상.

△청량산 최고의 풍경 연출하는 응진전

청량산 아래에는 낙동강 긴 물줄기가 흐른다. 산 입구에서 바라보면 강을 따라 마치 주상절리를 옮겨 놓은 듯한 절벽이 솟아 있다. 이 절벽은 옛날부터 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서식해 학소대라고 부른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학소대와 나란히 서 있는 금강대 또한 비경이다.

청량산 입석에서 금탑봉을 향해 천천히 올랐다. 봉우리 사이로 가는 길은 마치 그림 속을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바위가 층층이 쌓아놓은 금탑 모양을 하고 있다는 금탑봉은 3층 층암절벽이다. 암벽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다. 금탑봉은 예전에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의 이름을 따서 치원봉으로 불렀다. 봉우리 기암괴석 동굴 속에서 최치원이 마시고 더 총명해졌다는 총명수가 샘솟는다. 봉우리 아래에는 절벽이 병풍처럼 두른 암자, 응진전이 있다.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암자로 663년 세워졌다. 가을이면 오랜 세월이 녹아든 응진전에 붉은 단풍 물결이 덮쳐 청량산 최고의 풍경을 만든다.

금탑봉보다 높은 곳에 있는 김생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글씨의 대가, 김생이 9년간 글씨를 수련했다고 한다. 여기에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하산하려는 김생에게 갑자기 길쌈을 수련한 청량봉녀가 나타나 실력을 겨루자고 했다.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일화처럼,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해 비교해보니 청량봉녀가 짠 천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김생의 글씨는 고르지 못했다.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은 1년을 더 수련하고 세상에 나가 최고의 명필이 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김생이 붓을 씻었다는 우물, 세필정도 남아 있다.

청량사.
청량사.

△전설과 보물 간직한 천년고찰 청량사

청량산 자락에는 응진전과 더불어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있다. 연화봉 기슭 구불구불 험한 산길을 따라 거친 숨을 내쉬며 걷다 보면 활짝 핀 꽃 안의 꽃술처럼 청량산 열두 봉우리가 품은 청량사를 만난다. 천년고찰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예전에는 연대사(蓮臺寺)로 불리며 30여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큰 사찰이었다. 연대사는 무너져 터만 남았고, 연대사 부속 건물 중 하나였던 유리보전이 청량사라는 사찰로 이름을 바꿨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소박한 건물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처마 선은 단정하다. 기둥 위에 용머리와 용 꼬리가 장식돼 있다.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왔을 때 쓴 친필이라고 한다.

유리보전 앞에는 세 갈래로 가지가 뻗은 소나무가 서 있다. 적막한 산속에서 세월을 꿋꿋이 견뎌온 소나무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지을 때, 절 아랫마을에서 논을 갈고 있는 농부와 소를 만났다. 뿔이 세 개나 달린 소는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날뛰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농부에게 소를 시주하라며 소를 받아 돌아왔다. 제멋대로였던 소는 절에 와 고분고분 말을 듣고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과 물건을 밤낮없이 날랐다. 절의 준공을 하루 앞둔 날, 소는 숨을 거뒀다. 원효대사가 죽은 소를 묻었더니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랐다. 이를 ‘삼각우송’이라 하고, 소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

오랜 설화처럼 청량사에는 오래된 보물도 있다. 청량사 건칠보살문수좌상은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삼베를 입혀 칠을 발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다 일정한 두께가 되면 조각해 만든 불상으로 눈 부위에는 장식을 새겨 넣었다. 보기 드문 건칠불상(종이불상)은 얼굴, 신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보아 12~13세기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사리나 경전 같은 유물을 가슴이나 배속에 봉안한 것인데, 건칠불상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청량사 지장전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16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유교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 드물다는 점에서 조선 불교 조각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청량사는 지금은 작고 소박한 사찰이 됐지만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간직한 거대한 박물관 같다.

청량사 유리보전 옆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오르면 하늘과 가장 가까운 다리를 만난다. 산이 하늘 높이 닿을수록 골짜기는 깊기에, 하늘다리를 향해 오르는 산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고생 끝에 오른 청량산의 명물 하늘다리는 2005년 90m 길이로 설치됐다. 해발 800m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한다. 깊은 산속에 설치된 다리를 건널 때 골짜기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등골이 서늘하지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펼쳐진 능선을 바라보면 두려움은 금세 사라진다.

물길이 아름다운 매호유원지.
물길이 아름다운 매호유원지.

같이 가볼만한 곳

청량산 물길 매호유원지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 있는 매호유원지는 낙동강과 운곡천이 만나 청량산을 휘도는 부드러운 물길이 아름답다.

태백산맥과 일월산맥 황우산의 만나는 곳이라 산수가 수려하다. 산과 물이 만나는 모습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모습 같아 매호(梅湖)라 부른다. 범바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호유원지는 은어와 잉어가 많이 잡혀 옛날부터 낚시터로 이름났다. 산이 깊고, 물길도 깊어 등산하면서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낙동강과 운곡천이 만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는 옛날 용이 살았다는 못, 용소가 있다. 명주꾸리 세 개를 풀어 넣어야 할 만큼 깊다고 한다.

매호유원지 하류 암반에서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용천수도 흘러나온다. 봉화 청량산은 산 좋고 물 좋은, 그야말로 백두대간 천혜의 자연이다.

 

/봉화=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기획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