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단수에 길 끊기고 쑥대밭 된 마을, 긴급 구호물품 지원도 없고<br/>오지라 도배·보일러 등 수리공 못구해 경로당서 쪽잠… 건강 위협
“집이 물에 잠긴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눅눅해. 보일러를 켜서 집안을 말리고 싶어도 수리공이 없어 손쓸 방법이 없다네”
13일 오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일대. 역대급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쑥대밭이 된 마을은 도심과 멀리 떨어진 탓에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아 피해 복구가 지지부진했다.
이곳은 지난 6일 새벽 태풍 ‘힌남노’가 물 폭탄을 퍼부으며 장기천의 둑이 내려앉아 농경지를 포함한 마을 전체가 침수 피해를 봤다. 시간당 400∼5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자 강으로 흘러나가야 할 장기천의 물이 역류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여파로 둑이 무너지면서 마을 전체가 물바다가 돼 버렸다. 당시 물은 1.5m 높이까지 차올랐고, 저지대 주택들을 모두 삼켜 버렸다. 그 여파로 지역의 200여 가구가 침수되면서, 마을 주민 80% 이상이 이재민이 됐다. 태풍 때문에 길이 끊기고, 통신이 두절되고, 정전과 단수 탓에 평온했던 마을은 폐허가 됐다.
특히 주민들이 400여 년간 수호신처럼 여겼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심은 은행나무가 뿌리채 뽑히는 모습을 보며 속상했다. 태풍이 지나간 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마을 곳곳은 당시 피해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 위치한 주민 성치상(68) 씨의 집 마당은 냉장고와 세탁기, 선풍기, 에어컨 등 고장 난 가재도구들로 가득했다. 집 내부에는 물에 젖은 바닥 장판과 벽지들이 뜯어져 있었다.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뒀지만, 침수된 집은 무척이나 덥고 습했다. 그가 침수된 집에서 유일하게 건질 수 있었던 건 벽에 걸린 가족사진뿐이었다.
성씨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도배와 보일러 수리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집안에 곰팡이가 퍼지는 걸 막으려면 실내 공기 습도를 낮추는 게 중요하지만, 침수로 인해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보일러를 켜서 실내 바닥을 말리고 습기를 없애 줘야 함에도 보일러를 고쳐줄 수리공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 이들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로 인해 성씨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대다수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인근 경로당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하고 있다.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잇따르면서 주민들의 위생과 건강관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그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 저소득 영세민들이고, 이곳 역시도 막심한 피해를 입었는데 구호 물품 지원은 물 한 병도 오지 않았다”며 “벽지와 장판에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해서 보일러 수리 작업을 하고 싶은데, 수리공들이 이곳까지 작업하러 오기를 꺼려 복구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반복되는 수해를 미리 막지도 못하고, 사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은 폭우가 내릴 때마다 장기천의 제방이 터질 것을 염려해 포항시 등에 수차례 준설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포항시는 “이 일대에 수성리 사격장이 있어 관리 주최는 국방부다”고 했고, 국방부는 “행정적인 지원은 포항시의 몫”이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이들 기관의 ‘핑퐁행정’ 탓에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주민 배남수(66)씨는 “행정기관에서 주민들의 말을 경청하고 준설 작업만 진행했다면 지금과 같은 피해를 십 분의 일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며 “주택이 침수된 경우 가구당 2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복구 작업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고, 이재민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해줬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시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