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 휩쓴 포항 대송면<br/>시간당 145㎜ 물폭탄·하천 범람<br/>주택 붕괴·차량 침수 등 초토화<br/>물 먹은 가재도구 건질 것 없고<br/>추석 앞둔 이재민들 ‘망연자실’<br/>대송면은 지대 낮아 상습 침수지<br/>배수펌프장 용량 확대 우선돼야
“한 시간 만에 2m 높이만큼 물이 차오르더니 온 동네가 그대로 물에 잠겨 버렸어요. ”
7일 오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내리 일대.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지나간 이곳은 온 마을이 뻘밭으로 변해버렸다.
제내리는 제11호 태풍 ‘힌남노’고 몰고 온 시간당 145㎜의 물 폭탄으로 마을 전체가 물바다가 되었고, 그 물이 빠져나가면서 사방에서 흘러들어온 흙들이 도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물에 젖어 엉망이 된 가재도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밥솥에서부터 TV, 세탁기, 장롱, 냉장고, 자동차까지.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었다.
마을 주민과 해병대원, 해양 경찰관 등 자원봉사자들은 흙과 잔해물을 자루에 담아 옮기고, 가재도구를 정리하는 등 수해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복구 작업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연신 한숨을 몰아쉬었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모습이었다.
주민 홍진배(61)씨는 “새벽 3∼4시쯤에만 해도 물이 무릎 높이까지 왔었는데, 5시가 되니까 갑자기 물이 가슴 높이까지 치솟았다”며 “칠성천이 넘쳤으니 대송교회로 긴급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고 칠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온 힘을 다해 걸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 수위가 높고 물살이 세서 마치 파도가 치듯이 물이 밀려와서 걷는 내내 몸이 휘청휘청 거렸다”며 “그 물이 그대로 주택과 빌라, 원룸 1층 건물 안으로 밀고 들어가 모두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폭우에 대비해 도로변과 인근 저지대 아파트에 있던 100여 대의 차량을 대송면행정복지센터의 주차장으로 옮겼지만, 모두 피해를 입었다. 도로 곳곳에는 수해를 입은 차량이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주민 정명화(48)씨는 “차량이 침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자차 보험을 들지 않았는데, 차가 침수되는 바람에 고물 값에 폐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마트 서너 곳이 물에 잠기고 이 중 한 곳만 영업 중인데, 차가 없어서 식료품을 사러 다른 마트까지 가서 살 수 없는 상황이라 시원한 물과 음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 일대의 상가들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입어 영업이 불가능했다. 추석 대목을 앞둔 시점이라 상인들의 피해는 평소보다 더 컸다.
박수영(44·여)씨는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가 이번 태풍으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모든 일정을 미루고 지난 6일 오후 충남 서산에서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가 본 가게의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그는 추석 명절을 대비해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과일, 채소, 반찬 등 모든 재료를 버려야만 했다.
가게 안으로 물이 들어차면서 부력으로 냉장고가 떴고, 천장을 그대로 들이받으면서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처참하게 변해 버린 가게의 모습을 본 어머니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운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도대체 언제쯤이면 원래 가게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이번에도 빗물 펌프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화를 더욱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포항지역의 경우 비를 수용할 수 있는 펌프장은 지역 내에 모두 36개(빗물펌프장 15개, 간이펌프장 21개)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 최대 시간당 60㎜의 빗물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의 모든 빗물 펌프장이 가동하고 있었지만,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마을주민은 “배수펌프장이 있어도 거의 해마다 태풍철만 되면 범람과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대송면 일대는 지대가 낮아 상습 침수 구역인데, 지금보다 배수 펌프장의 용량과 대수를 늘려야만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