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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밖엔 없어 <Ⅸ>

등록일 2022-09-05 17:46 게재일 2022-09-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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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건욱

그날의 술자리를 기억해낸 우현이 노마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날 내가 한 말을 믿고 지금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나한테 미리 말도 없이?

-꼭 그런 건 아닌데. 네가 한 말이 생각나기는 했지. 내 주위에 이 방면으로 아는 사람이 너 말고 없잖아. 그리고 그 늙은이한테 너도 악감정이 있지 않냐. 내가 뒷이야기 하나 더 해줄까?

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노마가 낯설었다. 이 녀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무슨 이야긴데?

-안나 임신했다. 그 늙은이의 아이란다.

-임신? 그게 가능해?

-임신했다니까. 가능하냐고 물을 문제가 아니지. 이미 현실인데.

우현은 늙은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안나는 왜 피임을 하지 않은 거지? 설마 임신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한 건가? 우현은 안나의 생각이 궁금했다. 노마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아이 아빠를 죽이는 거잖아. 안나는 어떡하라고? 아이는? 안나도 알아?

-당연히 안나는 모르지. 알면 날 가만 두겠냐? 아이는 일단 낳아야지. 그다음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고. 늙은이의 자식인데 뭐가 걱정이야. 친자 확인하면 다 나올 건데. 걱정 안 해도 돼. 늙은이 재산이 좀 되니까 물려받는 것도 제법 될 거야.

우현은 노마의 대답을 들은 뒤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기도 했고, 자고 있는 늙은이를 쳐다보기도 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뒤 노마에게 물었다.

-내가 얻는 건 뭔데? 복수?

-넌 얻는 게 많지. 인공 장기, 복수, 그리고 운 좋으면 안나. 장례 치르고 나면 안나에게 연락해 봐,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어? 아이는 안나와 네가 같이 키워도 되고 아니면 그 집안에 맡겨버려도 되고.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야. 안나 하고 상의해 봐야지. 작업을 할 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빨리 가야 해. 좀 밟는다.

노마가 속도를 높이자 우현의 몸이 뒤로 쏠렸다.

-이거 너 혼자 계획한 것 아니지?

우현이 다시 물었다.

-너, 그리고 내가 하는 거지.

노마가 대답했다.

-그런 대답 말고.

우현이 노마를 다그쳤다.

-더 이상 묻지 마라. 넌 나까지만 알고 있는 게 좋은 거지.

직원이 다시 돌아왔다.

-특별한 일은 없었고?

우현이 물었다.

-네. 특별한 말 없었습니다. 지난번 물건들도 모두 시술했는데 작동이 잘 되고 있답니다. 참. 그것도 이식했답니다, 폐. 이제 사무실로 출발하면 되는 거지요. 사장님.

 

신경 써 주어서 고맙긴 해. 그래도 어쩌겠나. 내 직업이 형사인 것을. 우현 씨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할 게. 얼굴 한 번 봤으면 하는데. 가능할 것 같으면 연락 줘.

허 형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현이 허 형사에게 문자를 보낸 지 일주일 만이었다. 나는 물건을 회수하고 넘긴 것뿐이야. 이 업계에서 일을 하려면 지켜야할 비밀이기도 하지. 나는 아는 게 없는 거지. 실제로도 그렇고. 그러니 해줄 말도 없는 것이고. 그런데 왜 이리 불편하지?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 같단 말이야. 기분이 더러워. 우현은 몇 차례 헛기침을 했고 손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허 형사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우현이 허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저 우현입니다.

-고마워. 그래. 만나주기로 한 거야?

-네엡. 이렇게 간곡히 청하시는데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저를 만났다는 사실만 비밀로 해 주시면. 불법적인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나면 이 업계에서 끝입니다.

-알았어. 걱정 마.

우현과 허 형사가 마주 앉았다. 반 팔 면티와 청바지를 입은 허 형사가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하아. 천하의 허 형사님 패션이. 쥑입니다요. 사모님 코디입니까?

우현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마누라, 죽었어. 이 년 전에.

허 형사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아니 어쩌다가. 가만 있자. 그러면 이식받은 지 삼 년 만에 돌아가신 거네요. 아이고. 이를 어째. 죄송합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실수를 했습니다. 아이고. 미인이셨는데. 아직 젊으신데. 아이고.

허 형사의 눈치를 보며 우현이 호들갑을 떨었다.

-괜찮아. 내가 말을 안 해 준 거니까. 좀 조용히 말해.

우현의 호들갑이 신경에 쓰이는 듯 허 형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식받은 콩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하긴 그랬으면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셨겠지만.

-다른 문제로. 알겠지만 당뇨가 어디 한두 군데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

허 형사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당겼다가 내쉬었다. 회색 연기가 테이블을 벗어나 옆 테이블로 넘어갔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인상을 썼다. 우현이 허 형사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렇기는 하지요. 그런데 저는 왜 몰랐을까요? 인공 장기 이식받으신 분이 사망하면 저 같은 업자에게 연락이 오는데. 아마 다른 업자에게 연락이 먼저 갔나 봅니다. 이 상황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기는 하지만, 장기 값은 받으셨지요?

-장기 값. 받기는 받았지. 받은 날 저녁에 다 써버려서 그렇지. 룸에서 술 먹고 이차 가고. 그렇게 다 써버렸어. /김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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