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웅 ④<br/>포항에서 시작한 교사의 길
대학 졸업 후 포항으로 돌아온 한동웅 선생은 우연한 기회에 영일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고, 4년 6개월 후 동지상고로 옮기게 된다. 교사자격증도 없이 시작한 교사 생활은 우여곡절이 계속 이어진다.
대학 졸업 후 포항에 내려와 영어가정교사를 하다 학원영어강사를 했지. 그러다 영일중학교에 영어 교사가 필요하다는 부탁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어느날 도교육청에서 무자격 교사는 모두 내보내라는 지시로 어쩔수없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지. 그런데 교사를 못구해서 결국 다시 부임했어. 허술한 세상이었지. 그 후 나는 사회과 교사자격증을 취득했지. 하태환 씨의 손아래 처남 김병윤 씨의 도움으로 1968년 8월31일부로 동지상고에서 영어를 가르쳤는데, 전공하지 않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상치 교사는 안된다고 해서 다시 영어교사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지.
김 : 대학 졸업 후 포항에 오셨는데 당시 상황이 궁금합니다.
한 : 그때는 대학 재학 중에 입대하면 1년 6개월 만에 제대할 수 있었거든. 그런데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아까웠던 거야. 대학을 졸업하고 길을 잘 찾아보면 군 복무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돌이켜보면 내 생각이 짧았던 거야. 군 소집 영장을 피해 다녔으니 진로 선택에 얼마나 큰 제약이 있었겠어. 국가 공무원 시험은 아예 볼 수도 없었지. 좀 쉬면서 때를 기다려 보자는 생각으로 포항에 온 거야. 군 복무는 나중에 동지상고 교사로 근무할 때 50사단에 가서 6주 훈련받고 끝냈어.
김 : 포항에 와서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한 : 영어 강사로 바빴지. 영어를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서 자전거 타고 가정교사를 많이 다녔어. 포항여고 상위 학생들 그룹 과외를 했고, 한영빈 기독병원 원장의 아들도 가르쳤어. 영일군청 앞에 수학학원이 있었는데 포항여고 학생들이 많이 다녔지. 그 학원 대표의 제안으로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했는데 만원을 이루었어.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돈 쓸 시간이 없었지. 학원 바로 앞에 탁주집이 있었는데, 강의를 마치고 나면 거기서 탁주 곱빼기 한 사발 들이키는 게 낙이었어.
김 : 교직에는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한 : 포항수산초급대학에 김익하 교수라고 있었어. 영일중학교의 설립자인 김익로의 사촌으로 당시 영일중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었어.
그분이 아버지에게 부탁한 거야. 영일중학교에 영어 교사가 필요하니 나를 좀 보내달라고. 나는 교직에 뜻이 없었어. 당시 대졸자는 신청만 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주었는데, 내가 선생 하겠냐는 생각에 신청조차 안 했거든. 그런데 조건이 딱 6개월 근무였어.
김익하 교수가 아버지에게 어렵게 부탁한 것이어서 승낙했지. 그런데 영일중학교 근무 기간이 4년 6개월이나 되고 말았어.
김 :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습니까?
한 : 술과 정 때문이었지. 술을 좋아하다 보니 함께 술 마시던 교사들과 정이 들었고 아이들과도 정이 들었어. 이런 일도 있었지. 어느 날 도교육청에서 무자격 교사는 모두 내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나는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 그런데 아이들이 난리가 난 거야. 특히 덩치 큰 규율부 아이들이 선생님 가시면 안 된다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김 : 영일중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겠네요?
한 : 그만두긴 했는데 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못 구해서 결국 다시 부임했어. 여러모로 허술한 세상이니까 가능한 일이었지.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려면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교원자격 검정고시에 응시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어서 사회과 교사자격증을 받았어.
김 : 영일중학교 축구부가 강하지 않았나요?
한 : 그랬지. 1950년대에 전국대회 우승도 했잖아. 굉장한 사건이었지. 교무실에 축구부가 받은 상장이 빼곡하게 있었어.
김 : 동지상고로는 어떻게 옮기게 되었습니까?
한 : 동지상고 교사 중에 서석두라고 있었어. 나와는 절친한 친구였지. 장기가 고향인데, 알다시피 유배지인 장기 출신 중에 인재가 많잖아. 서석두도 그중 한 명이야. 포항중학교를 거쳐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였지. 술을 좋아하고 노래도 잘 부르던 낭만파였는데 나중에 포항제철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해. 서석두가 장기중학교에 근무할 때 내가 버스 타고 그 먼 장기까지 가서 밤새 술 마시고 학교 숙직실에서 같이 자기도 했어. 그 친구가 동지상고 영어 교사 자리가 비었다고 오라고 한 거지. 서석두는 안타깝게도 수년 전에 작고했어.
김 : 동지교육재단을 설립한 하태환 씨 권유로 동지중학교에 입학한 인연이 있는데, 다시 동지상고 교사로 가게 되는군요.
한 :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 4·19혁명이 일어난 후 지방으로 가서 4·19 정신을 전파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어. 나도 이 흐름에 동참했지. 혁명 후 국회가 자진 해산하고 7월 29일 역사상 처음으로 민의원의원 선거와 참의원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그 직전이었어. 나는 포항으로 와서 군중으로 가득 찬 육거리에서 연설했지.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앞에 트럭을 세워두고 그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시공관(현 시립중앙아트홀) 앞에서 누군가 지프차를 세우더니 트럭 앞으로 다가오는 거야. 지팡이를 짚고 오는 사람은 하태환 씨였어. 당시 민의원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니 그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 특히 내 연설은 혁명 전에 자유당 의원이었던 하태환 씨 귀에 거슬리지 않았겠어. 그런데 막상 트럭 앞에 와서는 내 옆에 있던 친구 김박문의 가슴을 지팡이로 찌르며 나무라는 거야. 내가 한흑구의 아들인 줄 아니까 차마 나를 나무라지는 못하고 애꿎은 친구한테 분풀이를 한 거지.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하태환 씨가 세운 학교에 내가 지원했으니 어떻게 되었겠어?
김 : 동지상고로 가는 게 쉽지 않았겠군요?
한 :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가능했잖아. 사연은 이래. 김병윤 씨라고 동지교육재단 설립과 운영에 크게 기여한 분이 있어. 하태환 씨의 손아래 처남인데, 이분이 하태환 씨를 찾아가 나를 동지상고 영어 교사로 채용하자고 말을 꺼냈어. 그랬더니 하태환 씨가 “그 친구는 한흑구 선생 장남 아닌가. 1960년 7월 선거에서 나를 낙선시키려고 한 놈인데 안 돼”라고 했다네. 김병윤 씨가 그때 일은 다 지나갔고 영어를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교사인데 채용하는 게 어떠냐고 다시 건의하니 하태환 씨가 순순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는 거야. 훗날 누군가한테 이 대화를 전해 들었어. 하태환 씨는 그렇게 통이 큰 분이었지.
김병윤은 1922년 포항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전문학교 법과를 중퇴하고 포항수산초급대학 증식학과를 졸업했다. 동지교육재단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포항시의회 의원, 포항시체육회 회장, 동지교육재단 이사장, 포항수산초급대학 학장, 포항시장(1959년), 농림부 차관을 역임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포항시·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김 : 친구 김박문 씨는 어떤 분입니까?
한 : 포항중학교를 거쳐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지. 죽도시장에서 신성상회를 운영하며 부를 일구었고, 신앙심이 깊어 제일교회 장로를 지냈어. 부친도 제일교회 장로였으니 대를 이어 장로를 한 거지. 재담이 뛰어나 친구들이 좋아했어. 제일교회에서 노인학교 교장을 했는데 재담 덕분에 인기가 높았지. 그래서 교장 임기가 끝났는데 노인들이 계속하라고 하는 바람에 교장을 더했다고 해. 건강이 안 좋은지 근래 연락이 통 안 되네.
김 : 동지상고 교사 생활은 어땠습니까?
한 : 1968년 8월 31일부로 동지상고 교사로 발령을 받아. 그런데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나게 돼. 나는 사회과 교사자격증을 갖고 영어를 가르쳤거든. 나처럼 중고등학교에서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를 상치(相馳)교사라고 해. 그런데 도교육청에서 상치교사가 있으면 안 된다고 자꾸 지적하는 거야. 그 바람에 나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시검정이라는 걸 치러 영어 교사자격증을 취득해야 했어. 당시엔 고시검정이 사법고시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 결국 이 시험을 치렀고 최종 합격자 21명 안에 들었지. 정치외교학과 졸업생이 학교에서 마음 편하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는 과정이 멀고도 험난했어.
대담·정리 : 김도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