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전 상류 문화 고스란히<br/>역사적·문화적 가치 등 높이 평가
22일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가옥 ‘상주 수암 종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위치한 수암 종택은 류진을 불천위(不遷位) 제사로 모신 종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지리적 위치나 구조를 봤을 때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수암 종택은 속리산, 팔공산, 일월산 지맥이 모이고 낙동강과 위천이 합류하는 이른바 ‘삼산이수’(三山二水) 명당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류성룡의 수제자였던 상주 출신 우복 정경세(1563∼1633)가 집터를 정했다고 하는데, 우복 종택은 수암 종택 서북방 약 32㎞ 떨어진 지점에 있다.
수암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본채와 별채인 녹사청, 사당으로 구성돼 있다.
경북 북부 지방 건축 양식이 반영된 본채는 안채의 대청 오른쪽 마루방을 높게 해 누마루처럼 꾸민 점이 특징이다.
대청 상량 묵서(墨書·먹물로 쓴 글씨)에는 1858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본채 앞에 있는 ‘ㄱ’자형의 건물인 녹사청은 류진의 7대손인 류후조(1798∼1876)가 1872년 ‘봉조하’(奉朝賀)라는 벼슬을 받은 뒤 녹봉을 가져오는 관리를 맞거나 묵게 한 건물로 추정된다.
봉조하는 70세 내외의 2품 이상 퇴직 관료에게 특별히 내린 벼슬이다.
수암 종택에서는 류진의 불천위 제사를 비롯해 다양한 제사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기도 하다.
녹봉 증서인 ‘녹패’, 편지, 문집 같은 옛 문헌과 가마, 관복 등 여러 민속 유물이 남아 있어 19세기 이전 상주 지역의 상류 주택 생활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류진이 쓴 ‘임진록’(壬辰錄)과 ‘임자록’(壬子錄), 흥선대원군과 류후조가 주고받은 글인 ‘운현간첩’(雲峴簡牒) 등도 보존돼 있는데 이 자료들은 대학과 박물관 등에서 관리하고 있다.
수암 종택에는 여러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이조참판, 우의정 등에 임명됐음에도 청렴한 생활을 했던 류후조는 녹봉이 떨어졌을 때 손님이 오면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인 물인 ‘백비탕’(白沸湯)을 놋그릇에 담아 대접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도 한때 이곳에 머물며 영남 지역 인물을 파악했다고 하며, 종택의 대나무 병풍이 흥선대원군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문화재청은 “이런 건물이 민가에 남아 있는 것이 희소한 사례로 평가된다”며 “청백리 집안답게 별다른 장식 없이 소박하지만, 당시 사회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