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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한 줄 ‘문장’이 주는 위로와 감동이란…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2-08-16 19:37 게재일 2022-08-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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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 소설가들이 바라본 베트남 전쟁

문학평론가 이경재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소설과 그 소설의 무대인 공간의 연관성’을 탐구해온 국문학자다.

몇 해 전엔 본지에 ‘경북문학기행’을 6개월 간 연재하며 문학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 대구·경북 소설가와 시인들을 세밀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숭실대 국문과 교수이기도 한 이경재가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은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3개 나라 소설가들의 작품 연구를 통해 ‘베트남 전쟁’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해석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이 교수는 다문화를 소재로 한 소설들을 읽으며 그것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그 관심은 이번 저작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시작돼 1970년대까지 이어진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 민족해방을 지향하는 베트남인과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의 곤혹스런 입장 등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띠며 전개됐다. 한국도 이 전쟁의 제3자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인을 파병한 국가다.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진행된 전투는 군인들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작가들에게 충격과 환멸을 가져왔고, 이는 당연한 수순처럼 소설과 시로 형상화됐다.

이경재 교수는 ‘국가’ ‘정체성’ ‘젠더’라는 3가지 관점에서 베트남전을 소재로 하는 소설들을 읽어내 수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 전쟁의 뿌리를 찾아간다.

이 교수에 의하면 베트남 전쟁이라는 것을 소재로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미국 작품들의 경우 ‘현미경적 시각으로 병사의 감각에 제한된 현장밀착식 재현’을 위주로 하는 것이 많고, 한국 소설은 ‘베트남전의 보편적·역사적 맥락을 조망하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전쟁의 고통을 가장 크게 겪은 베트남 작가들의 경우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하며 비극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베트남인들의 내면을 형상화하는데 탁월하다’고 이경재는 설명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직전까지 베트남은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중 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역사적 아픔을 겪었는지 제대로 알려하는 이들은 드물었던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만약 이번 여름에 이경재의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를 읽는다면 이후에 떠나는 베트남 여행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너무나 자주 사용된 문장이라 식상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이니까.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하는 미국 작품들의 경우 ‘현미경적 시각으로 병사의 감각에 제한된 현장밀착식 재현’을 위주로 하는 것이 많고, 한국 소설은 ‘베트남전의 보편적·역사적 맥락을 조망하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전쟁의 고통을 가장 크게 겪은 베트남 작가들의 경우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하며 비극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베트남인들의 내면을 형상화하는데 탁월하다’

사랑은 불완전한 종교가 아닐지…

이병철 시인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이병철 시인은 독특한 사람이다. 통상 ‘시인’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해사한 얼굴에 여윈 몸, 영감을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는 불면 등과 이 시인은 거리가 멀다.

그는 아마추어 야구단의 에이스고,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유쾌한 선생이며, 프로 수준의 낚시 실력을 갖춘 한국에선 유사한 전례가 거의 없는 시인.

2년째 본지에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이병철은 그 긴 기간 동안 한 번도 원고 마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는 성실한 생활인이기도 하다.

이병철의 2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는 그가 시간을 쪼개 쓰며 살고 있는 삶이 어떠한 형태이며, 열망 뜨거운 한국의 젊은 시인이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병철은 시집의 제목이며, 동시에 인간들이 객관적으로는 영원히 해석해내지 못할 ‘사랑’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랑은 구원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신(神)이다. 인간이 실존의 한계인 죽음이나 현실원칙으로 인한 고통을 잊는 순간은 오직 타자와 사랑할 때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무모한 열정에서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빚어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랑을 완성했듯. 사랑할 때 인간은 신이다. ‘나’와 ‘너’가 만나 서로의 신앙이 되고, 서로의 세계가 되고, 서로의 신이 되어 구원했다가 끝내는 심판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종교라고 믿는다.”

사실 이병철의 말처럼 “시는 예정된 실패고, 미래가 없는 몰입이고,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체온보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달아오른 서로의 몸과 만질 수 없는 마음까지 애타게 탐하는 ‘사랑’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그래서다. 아래와 같은 이병철의 시를 읽다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여름밤의 찜통 같은 더위를 잊게 된다.

심장에 심으면 끝없이 자라서

이미 왔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되고

네가 서 있던 옥상의 소리와 진공이 되고

하늘로 오르는 붉은 그러데이션의 탑이 되었다…(후략)

청와대서 문학으로 돌아온 시인이 하고픈 말

신동호 시인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신동호가 자신의 본령이자 본업이라 할 문학으로 귀환했다.

세상의 흐름을 때마다 정확하게 읽어내고,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예민하게 포착해 써내야 하는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건 당연지사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그러나, 신동호는 이 지난한 작업을 5년간 큰 실수 없이 해냈다. 그를 오래전부터 알아온 기자는 그 5년 동안 신동호의 숨겨진 면모를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운문만이 아닌 산문도 좋은 작가다.

50대 후반인 그를 지금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신동호는 사실 10대 때부터 상징과 은유 가득한 문장을 써내던 영민한 소년 시인이었다.

19세에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동호는 청년 시절을 거치며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등의 시집을 펴내며 작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었던 사람.

그가 청와대로 갔을 때 누군가는 “출세”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 문학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지만, 천만에. 신동호는 보란 듯 시인으로 돌아왔고, 4번째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최근 출간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그러니) 여전히 골목을 서성일 수밖에 없다.”

신동호가 이번 시집을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여기서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 ‘가보지 못한 길’ ‘서성일 수밖에 없는 골목’은 모두가 ‘시(詩)’의 은유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들에겐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다. 신동호에게 어울리는 옷은 청와대가 아닌 앞으로 그가 서성일 골목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신동호는 언제나 문학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아래와 같은 절창을 쓰는 시인이니 그의 귀환이 더욱 반갑다.

‘두런두런. 쏘가리들이 일제히 강가 얼음 위로 꺼이꺼이 울다. 꺽지 몇 마리 슬그머니 물비린내로 눈물을 감추다. 이내 함박눈에 생이 묻히는 겨울밤.’

- 위의 시집 중 ‘겨울 장례’ 일부.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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