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국회의 대정부질문 장면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어느 여당 국회의원이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질문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질문 내용들이 가히 가관이었다. 국회 대정부 질문이라면 최소한 질문 대상자의 직무나 업무에 관련된 내용을 질의해야 할 것인데 전혀 엉뚱한 사항을 묻고 있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아느냐”, “현 대통령을 존경하느냐” 게다가 “이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차이점을 아느냐”라는 유치한 질문까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준답다(?)고 여기며 들을 수 있었다. 더 가관인 질문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더 훌륭한 분이 대기하고 있는데 왜 사퇴하지 않느냐”는 식의 호통소리(?)가 나왔을 땐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더 훌륭한 분’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 훌륭함의 기준은 무엇이며, 해당 업무를 실제로 수행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할 기관장인데 질문자가 특정인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서와는 달리, 대통령 직속기관이라 하더라도, 고유성과 독립성이 있는 공공기관들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수행업무 사항들이 크게 달라질게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들먹이며 임기가 남은 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법과 원칙 그리고 공정과 상식’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여당 의원의 질의는 질의가 아니라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인을 해당 기관장에 임명되게 할 의도를 가지고서 현 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것 같았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르면 기관장의 임기는 정해져있으며,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거나 직무수행에서 현저히 게으른 경우가 아니면 해임사유가 되지 않는다. 보도에 의하면,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은 각 상임위 간사로 내정된 의원실에 연락하여 상임위 산하공공기관 현황을 종합하여 보내라고 하면서, 한편으론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당 관계자는 방만한 경영과 과다한 부채 등의 문제가 있는 공공기관에 대한 개혁착수를 위한 조사라고 설명한다는데, 대통령의 국정철학 기준에서 명백하게 문제되는 공공기관은 필히 조사·개혁해야하며 기관장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엔 해당 기관장을 문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장 사퇴를 압박해선 안 된다. 그러한 압박 자체가 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의 기본정신에 현저히 반하는 것이며,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사퇴강요의 발언을 한 여당 의원이 오히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배치되는 행위를 한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아직까지 국정운영의 큰 틀이나 구체적 비전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기보다는 자신들 이해관계에 정신이 팔려있는 여당의원들이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