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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중 학생들과 함께 보살핀 ‘여인의 숲'

등록일 2022-08-08 19:45 게재일 2022-08-0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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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우 ③ 청하중 인수와 교육철학
청하중학교 교정.

기청산식물원을 찾아가다 보면 소나무 숲이 펼쳐지면서 청하중학교가 나타난다. 100~200년은 되었을 법한 아름드리 노송들이 아래로는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위로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관송전(官松田)이다. 나무와 나무 틈으로 지붕이 붉은 건물들이 보인다. 청하중학교다. 늦게 하교하는 한 학생이 숲길을 걷는다. 아름답고 넉넉한 숲에서 너희는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가만히 다가가 묻고 싶지만 깊은 사색에 빠진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발길을 돌려 곧장 식물원으로 향했다.

 

청하중학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학교 숲 부문 대상도 타고, 아름다운 전원학교로 선정되었어. 솔숲 대부분은 기청산식물원 소유인데 식물원이 학교를 품에 안은 형국이지. 이렇게 자연환경이 좋은 학교는 없을걸.

청하중학교 학생들과 같이한 보람있는 일 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여인의 숲’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 기념비까지 제작한 일이지.내가 청하중학교를 인수하고 나서, 그러니까 36년 전부터 우리 학생들하고 ‘여인의 숲’을 찾아가 보살폈어. 단순히 숲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향토의 역사와 지혜로운 조상들의 발자취를 본받게 하고 싶었어.

김 : 농대를 졸업하고 포항으로 오셨습니다. 부친께서 이사장으로 있던 재단 농장에서 농사도 짓고 나무도 기르면서 한편으로는 청하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 젊은 나이에 애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어. 난 회초리는 한 번도 안 들었어. 학생들이 궁금한 게 많았던 것 같아.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내 양쪽에 주렁주렁 매달리듯 따라오면서 질문을 했어. 교무실까지 따라와서 계속 질문하고 나는 대답하고 그렇게 가르치니까 얼마나 재밌고 신바람 났겠나?

김 : 정말 재미있었겠습니다. 청하중학교 연혁을 보니 1951년에 개교했더군요.

이 : 1951년 휴전협정 중에 세웠지.

김 : 이후에 선친께서 인수하신 건가요?

이 : 설립자가 부채가 많아서 우리 선고에게 넘겼어. 선고께서 돌아가신 후 형님이 사업하다 부채가 많아져 학교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된 거야. 그래서 내가 객기랄까, 아버지가 우리 가문을 교육자 집안으로 키워놓았는데 남한테 넘기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부채를 떠안고 맡게 되었어. 애초에 나는 여력이 생기면 대안학교 비슷한 농업계 고등학교를 세우고 싶었지. 철학이 있고 자존심 강한 인간 교육을 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어. 청하중학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학교 숲 부문 대상도 타고, 아름다운 전원학교로 선정되었어. 솔숲 대부분은 기청산식물원 소유인데 식물원이 학교를 품에 안은 형국이지. 이렇게 자연환경이 좋은 학교는 없을걸.

김 : 그렇지 않아도 오는 길에 관송전을 둘러보았습니다. 정말 좋더군요. 내친김에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식물원까지 왔습니다. 솔숲 산책로도 좋았습니다. 쉬엄쉬엄 가게 해주고, 무엇보다 직선이 아니어서.

이 : 직선으로 산책로를 해놓으면 심리 치유가 안 되거든. 직선은 죽음을 뜻해. 직선적인 사람들을 보면 뭘 부수거나 앞서 해놓은 걸 확 지우고 없애고 그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처럼 물은 흐르다 막히면 잠시 머물러 찰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힘차게 굽이굽이 흘러가지. 점심시간에 학생들의 식후 산책을 유도하기 위해 예산을 엄청 들여 조성했어.

김 : 후원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 : 식물원이 기증받은 것을 교정에 세웠지. 강화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거야.

김 : 주물이 아니고요?

이 : 주물이 아니야. 로댕의 후원자가 일본 사람이었어. 그 사람이 로댕의 양해를 받아 강화플라스틱으로 원작품 그대로 열 개를 만들었는데, 그중 한 개가 한국에 들어온 거지.

김 : 그게 지금 후원에 있는 건가요?

이 : 그렇지. 흉내 내어 깎은 것이 아니고 그대로.

이 : 교육적으로 좋다 싶어 가져다 놓았지. ‘논어’에 이런 말이 있어.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지. 요즘 보면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 수두룩해. 말이 앞서거나 많아. 되새김질하듯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데 말야. 되새김질하려면 고생하면서 공부해야 해. 정말 중요한 것은 철학적인 것, 즉 인생관이지. 고난이 없으면 나이테 없는 나무와 같아. 그렇게 자라면 태풍에 쉽게 부러지지. 고생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나무가 나이테를 만드는 것과 똑같아.

김 : 말씀하신 내용이 원장님의 교육철학이겠군요.

이 : 우리 학교의 교육철학은 “공부 선수는 공부 선수대로, 심부름 선수는 심부름 선수대로, 그 소질대로 성장하도록 교육 방향을 정해야 한다”거든. 교직원들한테 항상 하는 얘기가 성적 가지고 따지지 말라는 거야.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함 때문에 성공하거든. 부족함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그 공백을 메꿔야겠다는 의욕이 있으면 그게 성장이지. 학교에서 배운 게 다가 아니야. 건축으로 치면 중·고등학교, 대학교는 기초공사에 해당하지. 참교육 결핍 시대를 지나는 동안에 공부 잘해서 변호사, 의사 되고 출세만 하면 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데 그게 전부 착각이라. 아이들은 각자 잘하는 방향, 소양대로 키워야 해. 그리고 중요한 것이 체육이야. 건강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니까. 이런 우리 학교의 교육철학이 요즘 다른 학교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어. 우리가 선두주자인 셈이지. 그 덕분인지 우리 지역에서 들어오는 학생 수는 10여 명 남짓한데, 포항 시내와 외지에서 학생들이 몰려와서 한 학년에 두 학급이 유지되고 있어.

김 : 처음부터 한 학년이 두 학급이었습니까?

이 : 한때 네 학급까지 있었어. 학생 수가 천 명을 넘을 때도 있었지.

김 : 원장님이 계시기 전인가요?

이 : 내가 인수하기 직전까지 그랬던 것 같아. 인수하고 얼마 안 지나서 도시로 많이 나갔어.

김 : 물론 다른 사람한테 넘겨줄 수 없어서 인수한 것도 있겠지만, 나는 사학을 이런 식으로 해야겠다, 혹은 좀 전에 하신 말씀처럼 대안학교처럼 운영해야겠다, 이런 꿈이 있었습니까?

이 : 큰 꿈이라기보다 청하중학교를 좋아했지. 학교를 인수한 후 교직원들에게 회초리는 들어도 매질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어. 군기 잡는다고 몽둥이질하는 선생을 종종 봤거든. 그리고 아이들 자존심 상하게 뺨을 때리거나 그와 비슷한 행동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어. 내가 겪어보니 회초리를 들 틈이 없더라고. 갸름한 플라스틱 자를 한 번 쓰긴 썼지만.

포항 송라면 하송리 ‘여인의 숲’ 기념비 제막식.
포항 송라면 하송리 ‘여인의 숲’ 기념비 제막식.

김 : 청하중학교 학생들과 같이한 보람 있는 일을 소개해주시지요.

이 : 워낙 많아서 말이야. 그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여인의 숲’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 기념비까지 제작한 일이지. 이 숲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있어. 조선 후기에 이 마을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김설보라는 여인이 마을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땅을 사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등을 심고 숲으로 가꿔 마을에 기증했다고 해. 마을 저수지가 무너지고 하천이 범람해 떠내려가던 사람과 가축이 이 숲에 걸려 피해를 줄였다고 전하지. 내가 청하중학교를 인수하고 나서, 그러니까 36년 전부터 우리 학생들하고 ‘여인의 숲’을 찾아가 보살폈어. 단순히 숲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향토의 역사와 지혜로운 조상들의 발자취를 본받게 하고 싶었어. ‘여인의 숲’이라 이름도 지었고. 훗날 포항시에서 예산을 지원해줘 기념비도 건립했지. 참나무의 씨앗, 도토리를 품고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멋진 비야.

‘여인의 숲’은 2011년에 산림청과 생명의숲 국민운동, 유한킴벌리가 개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어.

김 : 졸업생 가운데 원장님처럼 농업을 하고 싶다는 제자는 있습니까?

이 : 요즘 농사짓겠다는 사람이 있겠나?

김 : 농사짓는 제자라면 많이 사랑해주실 것 같습니다.

이 : 만약 있다면 내가 아마 업고 다니지 싶어. 물론 그다음부터는 플라스틱 자를 들고 가르치겠지만.

대담·정리 : 김강 (소설가) / 사진제공 : 이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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