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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도 궤멸은 안 되는데 하물며 보수 세력을

등록일 2022-07-19 18:15 게재일 2022-07-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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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극시 ‘파우스트’의 앞부분 ‘천상의 서곡’에서 파우스트를 유혹하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허락하면서 신(창조주)은 “인간은 자칫하면 풀어지기 쉽고 무조건 쉬기를 좋아하기에 그들을 유혹하며 자극하게 될 악마의 역할을 할 동료를 붙여주려 하지”라고 말한다. 한편 파우스트가 그에게 접근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대관절 자네는 뭘 하는 자인가?”하고 물었을 때, 메피스토는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오히려 늘 선을 이룩하는 그 힘의 일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신의 위치에서 본다면 악마란 증오나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휴식이나 만족감에 빠지기 쉬운 인간을 흔들어 일깨우고 자극하는 존재가 된다. 신은 악마를 생성의 힘을 지속시키기 위한 자극제로서 절대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이런 의미에서 악도 신의 세계를 유지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선과 악은 대립적 특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을 보다 높은 질서와 조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이는 우주에서 낮과 밤 또는 음양의 조화와 작용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운행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신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동료나 장난꾸러기 정도로 여기며 꼭 필요한 존재로 본다.

생물종의 다양성은 지속적인 지구 생태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는 해충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익충의 먹이공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도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데, 고대 로마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 민족들의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포용했던 시대에는 번창하였지만, 동일 종교와 순수를 추구 강요하면서는 로마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 사회도 다양한 철학, 문화, 신념들을 포용하며 상호 존중하여야 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당시 정치권의 중심에 있던 어느 인사가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 나라의 주요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 궤멸’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으며,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민주사회란 다양한 사고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자극과 견제를 통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변화발전을 이어가는 곳이다. 진정한 진보라면 보수가 설사 악이라 하더라도, 궤멸시키려 하기보다는, 보수를 거울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건전한 양식의 진보라면 보수를 인정할 수 있는 자신감과 아량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수도 진보를 존중하고 수용하며 때로는 진보와 협의 협력할 줄 아는 능력과 자세를 갖추어야 사회가 보다 풍요롭고 발전적이 될 것이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라는 쪽에서도 ‘진보의 궤멸’을 생각해선 결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제대로 된 보수라면 진보가 건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진보 쪽에도 “이전 정부에서 ‘증오의 대오’를 ‘정의의 대오’로 착각하는 실책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음을 보수는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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