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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 없는 원상태 복원이 관건… 체계적 준비 ‘착착’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2-07-05 20:04 게재일 2022-07-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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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며 600년 경주 남산 마애불 일어설 날은?<br/>④ 2025년, 남산 마애불은 일어설까?
바닥을 보고 엎드린 남산 마애불은 2025년 허리를 펴고 일어날 수 있을까? /사진 이용선기자

몇 해 전. 불교미술사학자인 동국대학교 한정호(52)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한 교수는 아래와 같은 말로 신라를 포함한 고대 유적과 유물의 복원에 관한 조심스러움을 언급했었다.

“(유적과 유물의 조사·발굴·복원은) 올해 발굴하는 것보다 내년에 발굴하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10년 후면 더 많은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유적 발굴을 하다가 쥐똥이 나오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의 성분 분석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뭘 먹었고, 어떤 기생충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매장된 사람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성별은 물론 나이까지 알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유적 발굴 기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또 하나는 보존처리 기술이다. 이것 역시 후대로 갈수록 발전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 모든 걸 떠나서 유물은 ‘현재 상태’가 가장 안전한 상태다.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것을 인간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파내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다.”

역사 속 유물과 유적의 발굴은 인류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힘겹지만 고귀한 행위라는 건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는 당연명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는 학자들과 발굴자들, 문화정책 입안자와 집행자간의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이는 지향점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

 

불상 발견 이후 15년 동안 다각도로 ‘조사·연구·복원’에 노력

내년 입불공사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3년 뒤엔 전신 볼 수 있어

“그대로도 가치 있다”는 견해도 만만찮아 공론화 반드시 필요

거대한 남산 마애불의 훼손 방지를 위해 설치된 안전장비들.  /사진 이용선기자
거대한 남산 마애불의 훼손 방지를 위해 설치된 안전장비들. /사진 이용선기자

□ 세울 것인가? 그냥 그대로 둘 것인가?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 모든 것에는 나름의 역할과 몫이 있다. 그건 부처상과 예수상이 마찬가지. 섬기는 신의 형상은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겐 절대가치에 가깝다. 만약 손상되거나 파괴됐다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게 더없이 중요할 터.

오랫동안 기독교적 세계관을 음악을 통해 설파해온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64)는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후략)

 

남산 마애불과 종교적으로 보다 밀접하게 연관된 한국 불교계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입장이다. 지난해 늦가을 열암곡에 쓰러져 있는 부처를 다시 세우기 위한 법회가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조계종 총무원장 등이 참석한 이날 법회에서는 “경주 남산에 쓰러진 채 엎드려 있는 마애불을 온전히 일으켜 세워 불교 중흥을 이루겠다”는 다짐이 여러 차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불교계의 지향은 남산 마애불이 일어서는 것에 맞춰져 있다. 불교가 신라의 통치이념이자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본철학으로 역할했던 7세기와 8세기의 모습으로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형상을 복원시키고 싶은 것. 하지만, 합리와 이성이 지배한 21세기 한국사회의 역사학자들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앞서 한 교수의 말처럼 섣부른 계획과 기술 아래 진행되는 유물의 복원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기 때문.

 

□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자들의 오랜 노력들

 

바닥과 겨우 5cm의 간격을 두고 쓰러진 채 발견된 남산 마애불을 8년 동안 연구·조사하고, 복원의 방법을 고민해온 경주문화재연구소의 학자들은 지난 2015년 ‘정비보고서’를 출간하며 그 과정의 어려움을 아래와 같이 서술한 바 있다.

“마애불상(남산 마애불)의 보존과 안전을 위해 상태를 점검하고, 3D스캔을 이용한 형상분석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보존 상태를 파악하고 그 변화를 알기 위하여 편광현미경, SEM-EDX, XRF, XRD분석을 통해 암석의 성분을 조사하고, 초음파 탐사와 적외선 열화상 탐사를 실시해 풍화 훼손 정도를 정량화했습니다. 이러한 조사·분석 결과는 이후 사면 안정성 평가를 가능하게 하였고 그에 대한 안정화 대책방안을 낼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애불상의 발견 이후 그동안 보존·정비 방안과 주변 학술연구·조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조사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계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마애불상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최적의 이전 방안 등을 제시했습니다…(후략)”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정비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2012년 봄과 여름 사이 짧은 기간에만도 여러 차례의 자문회의와 안전진단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인용하는 대목이다.

△마애불상 변위측정 계측기 설치 및 점검(2012.03.20)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암석 2차 안전진단(2012.04.10~2012.05.09)

△마애불상 이전방안 1~3차 검토회의(2012.04.12, 2012.04.25, 2012.04.26)

△마애불상 회전 방안 및 지반안정화 검토회의(2012.05.10)

△마애불상 자문위원단 구성 및 자문회의 개최(2012.06.18)

경주 남산엔 쓰러진 마애불 외에도 적지 않은 신라 유적이 존재한다.  /사진 이용선기자
경주 남산엔 쓰러진 마애불 외에도 적지 않은 신라 유적이 존재한다. /사진 이용선기자

이처럼 불교계와 역사학계는 각자의 방식대로 남산 마애불의 입불(立佛·쓰러진 부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위해 오랜 시간 애쓰고 있다. 그 지향과 목적은 차이가 있겠지만.

□ 경주시, 장기 계획 아래서 남산 마애불 복원에 애써

 

남산 마애불이 쓰러진 상태로 발견된 지 15년. 그간 조사와 연구, 복원 프로젝트 수립에 애써온 이들이 적지 않다. 2022년 현재는 그 책임을 경주시와 문화재청 등이 맡고 있는 상황.

경주시청 문화재과 관계자는 2015년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열암곡 마애불상 정비보고서’가 발간된 이후 남산 마애불과 관련해 진행된 복원사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6년에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쓰러진 남산 마애불 입불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2018년에는 불상 인근 정비 방안 연구와 실시설계가 추진됐다. 그 결과 지난해엔 열암곡 마애불상 주변에 옹벽과 보호각을 설치하는 정비공사가 준공됐고, 올해 5월엔 역시 한국건설기술원의 주도로 불상의 보존관리 방연연구가 시행됐다.”

경주시는 쓰러진 채 오랜 세월을 지내온 남산 마애불을 일으켜 세우는 건 “신라 유물의 가치를 회복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관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당 마애불이 산 속 깊은 위치에 있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암부착망(산사태나 장마 등에 바위가 붕괴되지 않도록 씌우는 철망), 배수로, 계측시설을 설치하고, 입불을 위한 각종 실험과 기본·실시설계를 진행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남산 마애불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대적 기술을 이용해 한시바삐 남산 마애불을 과거 존재했던 위치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만큼이나 “고대의 유적과 유물은 무너지거나 폐허인 상태로도 얼마든지 귀한 가치가 있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경주시 문화재과 역시 이런 어려움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좋을지,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 등 입불에 대한 여러 견해가 많아 공론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또한 제대로 된 입불을 위해선 ‘실대형 실험(Full scale Test)’ 등의 안정적인 복원 방안도 지속적으로 연구돼야 하는 어려움 역시 엄존한다. 여러 조건을 볼 때 쉽지 않은 일이다.

779년(신라 혜공왕 시절) 혹은, 1430년(조선 세종 시절) 쓰러져 긴긴 세월 땅을 보고 엎드린 남산 마애불은 내년 1월 ‘열암곡 마애불상 보존관리 방안역구용역’이 완료되고, 그해 입불을 위한 실대형 실험과 기본설계를 마치면, 80t의 거대한 몸을 일으킬 준비를 끝내게 된다.

경주시는 실시설계와 입불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오는 2025년엔 남산을 찾는 시민과 여행자들이 마애불의 얼굴만이 아닌 몸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과연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적지 않은 이들이 쓰러진 경주 남산 마애불을 주목하고 있다.

<끝>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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