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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숲에서 스케치하며 화가의 꿈 키워

등록일 2022-06-27 18:56 게재일 2022-06-2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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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②<br/>포항중학교 미술반과 미술대 입시
포항 송도 솔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두호 작가. (2022년 6월)

김두호는 포항 미술의 여명을 밝힌 서창환을 만나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고 화가의 꿈을 꾼다.

인터뷰 내내 서창환 선생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그림에 대한 기억의 근원은 모두 서창환 선생에게로 닿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미대 입시를 준비하라며 석고상까지 빌려준 권영호도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이다.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 :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화폭에 담은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김 : 송도 숲이지. 포항중학교 다닐 때 서창환 선생님이 미술반 학생들을 데리고 토요일마다 송도 숲에 갔어. 그때 그림을 많이 그렸고 실력도 늘었지. 유화는 구경도 못 할 때여서 수채화를 주로 그렸어.

배 : 야외 스케치는 몇 명 정도 나갔나요?

김 : 대여섯 명씩 같이 갔어. 미술반 학생은 열 명 이상 됐지만 빠지기도 했으니까. 이젤도 없이 스케치북을 들고 갔어. 연필 스케치를 한 다음에 미술실에서 채색하기도 하고, 송도 숲에서 바로 채색할 때도 있고. 미술실에서 그릴 때는 4절지에 주로 그리고, 송도 숲에 갈 때는 8절 스케치북을 가지고 갔지.

배 : 미술 도구는 학교에서 지원해줬나요?

김 : 학교에서는 미술실만 제공하고 재료는 우리가 준비했어. 당시에는 물감도 비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물감이나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었어.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지.

배 : 포항중학교 미술반원 가운데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나요?

김 : 노태룡과 이방웅, 나 정도로 기억해. 선배 몇몇이 그림을 더 그렸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미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었어. 학교는 달랐지만 권영호 선생도 서창환 선생님 도움을 받았지.

 

포항중학교 다닐 때 서창환 선생님이 미술반 학생들을 데리고 토요일마다 송도 숲에 가서 수채화를 그렸지. 선생님은 나무와 숲을 그렸고, 나는 평생 자연을 그리고 있지. 서창환 선생님 덕분에 그림에 입문해 지금까지 왔으니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하지. 포항고 2학년때 경주 문화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어. 부례문 미국 선교사가 대학 등록금도 대주었고, 고3때 우연히 만난 권영호 선생도 입시 준비 하라고 석고상을 빌려줘서 서라벌예술대학교에 합격했지. 권 선생과는 마산 작업실에서 만나기도 하고 술한잔 하며, 인연이 각별해.

1950∼60년대 미술교육 현장의 풍경은 다음의 글에서 읽을 수 있다.

선생님들도 관심이 없고 “나가서 그려라” 하고 한 시간 쉬었다. 준비물을 안 가져오면 화장실 청소를 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선생님은 수업을 좀 했는데 그것도 서예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림 감상 쪽은 선생님들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가르칠 수도 없었다.

- 양민영, 『제1차·제2차 교육과정기 한국 미술교육의 역사적 풍경』, 한국학술정보, 2019, 81쪽

배 : 서창환 선생은 평생 나무와 숲을 그린 화가로 알려졌습니다. 김두호 선생님도 평생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셨지요?

김 : 그렇지. 서창환 선생님은 평생 나무와 숲을 그렸고, 나도 평생 자연을 그리고 있지. 서 선생님의 초기 그림은 굉장히 사실적인 편이었는데 대구에 가서 바뀌었어. 상세하기보다 큰 덩어리로 그렸고, 주로 흰 나무를 그렸지. 작품에서 경건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건 종교의 영향이 아닌가 싶어. 선생님이 북한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토지개혁 때 추방당해 포항까지 오면서 어려움이 많았지. 그때마다 기도로 극복했다고 말씀하셨거든.

배 : 서창환 선생님이 대구로 가신 이후에도 만나셨는지요?

김 : 대구로 가신 다음에도 날 잊지 않으셨어. 포항에 전시하러 한 번씩 오시면 반드시 나를 불러 “요새도 그림 그리고 있지?” 하고 물어봐. 그러면 “예, 하고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지. 지난 4월, 서창환 선생을 기리는 제자들의 작품전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는데 제자 여덟 명 중 나를 맨 처음에 넣어놨어. 대구 제자들만 해도 충분할 텐데, 포항에서는 유일하게 내가 포함되었지. 포항에 계실 때 댁에 자주 들러 인사를 나눴던 사모님의 의중도 있지 않았나 싶어. 서 선생님 덕분에 그림에 입문해 지금까지 왔으니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하지.

서창환은 제자 김두호를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 서창환이 김두호의 개인전에 부친 축사로 짐작해본다.

자신의 영예보다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그이기에…. 그는 구상계열의 작가로서 가장 즐겨 그리는 물의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의 붓끝을 거치면 심오한 물의 세계로 변해버리는 것은 그의 성품과 무관하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은 화려함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사물의 내면의 세계를 솔직하고 순박한 심정으로 그려냄으로써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기법이라 하겠다.

- 1993. 9. 7. 서양화가 서창환

배 : 포항중학교를 졸업하고 포항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경주로 전학 가셨지요?

김 : 선린애육원에서 포항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경주로 갔어. 선린애육원에 있을 때 대구에서 활동하던 미국 선교사 부례문(Rev. Raymond C. Provost, Jr)을 알았는데, 그분이 포항에 와서는 경주로 오라고 하는 거야.

알고 보니 경주 문화중·고등학교를 인수했더라고. 경주로 전학 오면 대학 진학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문화고등학교로 옮긴 거야.

서라벌예술대학에 합격했을 때 부례문 선교사가 등록금을 대주었지.

부례문 선교사는 1948년 한국에 선교사로 건너와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 6·25전쟁을 겪었다.

대구 선교부로 배치되어 그의 아내 부마리아 간호사와 함께 전쟁고아와 결손가정, 성직자 자녀를 위한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해 그들을 지원했다.

1960년대, 경주 문화학교가 파산 위기에 이르자 교장으로 취임해 미국 교회의 후원을 통해 무너진 학교 건물을 다시 세우고 학교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부례문 부부는 능력은 있지만 가난해서 공부할 수 없었던 수많은 지역 청소년들을 후원했다.

경주문화고등학교 졸업장을 들고 있는 김두호.
경주문화고등학교 졸업장을 들고 있는 김두호.

배 : 예나 지금이나 미대 진학을 위한 실기시험 준비가 만만치 않은데, 경주에서 입시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김 : 문화고등학교는 미술실이 없었어. 따로 지도하는 사람도 없어 순전히 독학으로 했지. 우연히 다시 만난 권영호 선생의 도움이 컸어. 권 선생은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어. 내가 포항중학교에 다닐 때 수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송도 숲에 자주 그림을 그리러 왔어. 예술적 기질이 뛰어난 사람이었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학과로 진학했다가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혀 미술로 전향한 것으로 알아. 구룡포중학교 미술 교사로도 있었고. 포항에서 활동한 초기 서양화가라고 할 수 있어.

권영호(1936~2012)는 1960년대 포항 화단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포항수산고등학교(현 포항해양과학고)를 졸업했으며, 서라벌예술대학을 나와 1961년 구룡포중학교 미술 교사로 부임했다. 고향이 경상도인 서라벌예술대학 학생들을 모은 ‘문동미우회(文童美友會, 서라벌동문전으로 명칭이 바뀜)’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1963년에는 포항 인근 미술대학 출신 모임인 ‘향미전’을 창립해 노태용, 원용일, 박명순, 이방웅, 김순란, 정외자와 함께 포항 화단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6년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포항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포항 미술사에 중요하게 남아 있다.

배 : 권영호 선생이 입시를 어떻게 도왔나요?

김 : 경주로 전학 가서 통 못 만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포항 시내에서 만났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입시 준비를 하고 싶은데 석고상이 없어 힘들다고 하니 선뜻 학교에 있는 줄리앙 석고상을 빌려주겠다는 거야. 그때는 대입 실기로 소묘를 봤거든. 그 석고상을 빌려와서 혼자 연습했어. 요즘은 연필로 그리지만 그때는 목탄으로 그렸거든. 제대로 되는 건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연습했지. 그렇게 서라벌예대 시험을 보러 가니까 마침 줄리앙을 그리라고 하는 거야. 다들 너무 잘 그려서 붙겠나 싶었는데 다행히 합격했더라고.

배 : 소묘를 그리면서 권영호 선생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나요?

김 : 그런 건 못 했어. 그냥 석고상만 빌려와서 내 나름대로 해본 거지. 권 선생과는 인연이 각별해. 마산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서 가깝게 지냈지. 권 선생이 술을 좋아했어. 만나면 술이었지. 성격도 호탕했고.

대담·정리 : 배은정(소설가) / 사진 촬영 : 김훈(사진작가) / 사진 제공 : 박경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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