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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극을 떠올리는 오늘

백소애 시민기자
등록일 2022-05-22 18:40 게재일 2022-05-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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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 23일 한국전쟁 중 안동 길산국민학교 대곡분교의 졸업사진.
지금까지 전쟁에 대한 생각은 막연함이었다. 흔히 미래의 전쟁은 핵전쟁, 생화학 무기, 지구 멸망으로 속결되는 이미지여서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보면서 전쟁이 현실적으로 체감됐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개별적 인간의 가장 큰 파괴를 일으키는 전쟁이 지금 현재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유린과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 생중계 되고 미디어는 정제 없이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휴전의 나라,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생생히 간직한 사람들은 이제 고령층이다. 전쟁의 기억과 상흔을 그들의 입을 통해 더 이상 직접 들을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6·25전쟁 당시 안동중학교 학생이던 권상길(88) 씨의 증언이다.


“1950년 7월 29일, 지금 시청 자리 향교골 친구 집에서 놀고 있는데 천주교 성당에서 방송이 나옵디다. 안동시민 여러분 3일간만 남하(南下)하십시오. 당시 안동중학교 학생이랬거든. 내가 애들한테 ‘남하가 뭐로?’ 물으이 친구들도 ‘몰따, 뭔 말인동’이래요. 하여간 뭔 급박한 일이 났는갑다 싶어 집으로 버뜩 갔어요. 가보이 아부지랑 어머니가 열심히 보따리를 싸요. 나도 옆에서 책을 싸니 아부지가 ‘야야 그건 무거워 못 가 간다. 지금 우리가 피난을 가야 하는데 우선 먹을 쌀하고 입을 옷이나 갖고 가야지 딴 건 아무것도 무거워 못 가 간다.’이캐요. 그래서 책도 내비두고 7월 29일에 피난을 나섰어요. 나이 먹은 지금, 어제 일도 잘 모르는데 그때 일만은 기억이 꽹해요.”


안동시 길안면 대곡리에서 나고 자란 김연대(81) 시인도 초등학생 때 6·25를 겪었다.


“우로 어깨 총 16개 동작이며 군가를 마스터 했어요. 반공 연극이며 오락도 했지요. 동란 첫해 말에 사랑하는 바로 밑 동생을 잃고 죽음에 대한 허무를 감당키 어려웠어요. 형과 함께 국민학교를 졸업했는데 사진 속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사친회장(육성회장)을 하셨던 우리 아버지세요.”


전쟁은 소수의 독재자에 의해 다수의 민중이 전쟁터로 몰리고 고통 받는 것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재산을 잃고 도시가 파괴된다. 역사의 패잔병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독재자들이지 국민이 아니다. 치유하기 어려운 전쟁의 상흔이 깊어만 가고 있다. 어서 빨리 이 비극의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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