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국회의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내외 귀빈과 4만여 명의 축하객 앞에서 16분의 취임사를 하였다.
취임사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볼 수 있어 국민적인 관심을 끈다. 취임사 초안은 정치 철학 전공의 윤모가 교수가 작성한다고 알려졌으나 언론은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보도하였다.
이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단어를 35회나 반복함으로써 자유를 국정의 핵심지표로 삼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이와 함께 자유의 주적이며 장애물인 ‘반지성주의’를 강력히 질타하였다.
취임사의 핵심인 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는 일반 국민들이 알아 듣기에 상당히 무거운 개념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도 무척 생소한 개념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상임고문인 어느 원로 정치인도 대통령 취임사는 논문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 추상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취임사의 키워드인 자유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흔히 쓰는 자유는 그리 간단치 않은 복합적 개념이다. 자유는 평등이 전제되어야하는 상보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결국 민주주의가 추구해온 최고의 가치이며 자유의 역사는 바로 민주주의의 쟁취사이다.
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자유’ 강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자유 과잉이나 일탈을 비판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취임사의 자유는 시카고 대학 교수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 Freedman)의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1979년 프리드먼의 명저 ‘선택된 자유’를 윤대통령은 선물로 받아 읽었다는 소식도 있다.
프리드먼은 저서에서 정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분산시키는 것만이 자유를 유지하는 원천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큰 정부’를 ‘작은 정부’로 어떻게 바꿀 지는 미지수다.
취임사에서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를 국정의 지표로 제시하였다. 전자인 자유와 인권 보장이 궁극적 목표라면 공정과 연대는 방법론적 가치이다.
이번 취임사에서 등장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m)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사용했던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잘못된 사상풍조이다. 흔히 집단의 정체성을 내세워 지성을 배제하고 상대를 적대화 하고 악마화 하려는 그릇된 사회적 풍조를 일컫는다.
취임사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다수가 상대를 억압하고 비판하는 우리의 포퓰리즘적 정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 풍토 역시 반지성주의적 소산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칭 촛불세력도 태극기 세력도 양측 모두 자유를 남용한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 측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omocracy)를 민주의의의 핵심적 이념으로 여기고 사회민주주의는 철저히 비판 배격한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나 제도의 차이에서 구분되는 개념이다. 정의를 위한 자유주의와 공동체 주의의 대립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혹자는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의 형용사나 수식어를 없애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민주주의로 위장하고 유신 독재로 둔갑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우파 측은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양심적인 진보 측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옹호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새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아직도 대선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이 끝났지만 6·1 지방선거가 반지성주의 프레임 정쟁을 격발시키고 있다. 지층과 반대층은 서로 상대를 반지성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로 구분해 싸우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이 나라 정치에서는 참된 보수와 진보는 사라지고 사이비 보수와 진보끼리의 분별없는 대립과 갈등만 계속될 뿐이다. 이번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한국 보수 우파 정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메시지는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대통령 취임사에서 협치와 화합의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의 적인 반지성주의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야권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정권을 가진 자들의 양보의 미덕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