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젠더 갈라치기’ 이슈가 뜨겁다. 남녀 간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화두라고 한다. 육아맘의 입장도 비슷하다. ‘여자’인 엄마 시각에서 아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생물체에 가깝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들은 맞는데, 기질과 성향, 관심사 어느 하나 비슷한 데가 없다. 뼈가 부러져 병원 응급실을 찾거나, 매일 아침 다리 저는 걸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줄넘기 수백 번을 어찌 매일같이 할 수 있는지 이해 불가다. 아들이 이토록 이해가 안 되니 어쩌면 지금의 남녀 갈등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머릿속 끊임없는 상상이 일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그간 ‘여자’로 살아왔던 엄마의 인생 경험치를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우선은 받아들이자. 으레 어른들이 하는 ‘아들은 원래 다 저래’에 담긴 성별 차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타고난 기질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놀이터 그네 공중돌기(그네에 서서 두 줄을 잡고 공중 제비돌기)까지는 허용해주었다. 대신 극한의 묘기를 선보이는 ‘유튜브 시청’은 막았다. 국가 공식 통계가 말해주듯이 영유아기와 아동기를 포함한 생애주기 동안 남아의 안전사고 발생률은 여아에 비해 훨씬 높다. 무조건 “안 돼”를 외치는 건 지양하고 싶지만 아이가 다치는 빈도만은 정말 줄이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들의 상상력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총칼과 전쟁놀이에 심취, 각종 무기의 성능과 미사일의 파괴력을 읊기 시작했다. 훗날 기억에 남는 작품집을 만들자며 시작한 스케치북엔 무시무시한 포탄과 미사일, 핵추진발사체 등이 채워졌다. 대공포와 발사체 중심이던 그림이 최근엔 핵잠수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00년 후 우리의 생활모습’을 그리는 사생대회를 준비하던 중 잠수함의 성능과 역할을 확인한 후 부터다.
아이가 매료된 건 해저 공간에서 실제 상주가 가능한 사례가 ‘핵잠수함’이란 부분이었다.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자력 에너지원으로 오랫동안 심해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실제로도 해저도시를 구현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잠수함 기술에 담겨있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해저과학기지인 아쿠아리어스(Aquarius)를 운영 중인 미국이 핵잠수함 최강국이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잠수함에 이끌렸던 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리를 위해 잠시 올라온 잠수정을 타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수직으로 낙하하듯 들어가는 입구부터 좁은 내부와 천장 위 각종 설비들이 심상치 않았다. 바다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장병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공학 기술의 정수를 잠수함 장비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술력의 결정체인 ‘잠수함’ 확장 버전이 해저기지 또는 해저도시라고 한다. 아들과 함께 사생대회를 준비하면서 100년 후 해저도시로 나들이 가는 일상을 상상해봤다. 사실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여러 나라들이 몇 해 전부터 해저도시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걸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실현 단계는 아니지만 계획을 보는 것만으로도 원대하고 뭔가 설렜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도 해저도시를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체는 울산시. 울산시는 지난 달 해양수산부의 ‘해저공간 창출활용 기술개발(R&D)’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해저도시 건설을 확정지었다. 지난해부터 ‘미래 해저공간 건설 타당성 검토 연구’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해저도시 건설에 착수한 결실이라고 한다.
울산시가 그리는 해저도시는 1단계와 2단계로 나뉜다. 먼저 수심 30~50m에 소규모(3~5명) 인원이 28일 간 체류하는 연구·관측 시설을 건설한다. 그 후 안정화 단계를 거쳐 수심 200m, 최대 30명의 사람들이 한 달 가량 머물 수 있는 기지가 구축된다. 해상풍력으로 얻은 에너지로 수소를 생성, 해저 저장시설에 보관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탄소배출 제로를 향한 그린에너지의 완결체 버전이다.
해저도시 건설에는 수많은 최첨단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된다. ‘극한공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건설 후 활용 방안도 다양하다. 심해환경 연구시설과 해저 데이터센터, 수중 다이버훈련시설 및 수중 쉼터 등이 먼저 거론된다. 데이터센터의 냉각 에너지를 줄이는 방안이 해저 데이터센터 건설이라고 한다. 또한 해저는 수압 외 모든 환경이 우주와 비슷해 우주인 훈련기지와 우주장비 실증기지로도 활용될 수 있다. 잠수함 기술개발이나 수중감시체계 구축 등 국가 안보시설 활용은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운용 중이다.
100년 후 우리의 생활 모습은 어떤 형태로든 달라질 것이다. 울산의 해저도시 건설이 성공하고 극한공학이 더욱 진일보한다면 잠수함이 여객선을 대체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상상과 공학의 만남이 잦아지고, 세상 그 어디도 없던 공간이 만들어지면 우리의 인식 체계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 결과 남녀 간 이해도가 높아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포용력은 넓어지리라 본다. 다치고 부서지고 깨지며 터득하는 내 아이의 상상력이 미래 세상의 작은 변화에 일조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아이의 무사 하교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