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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 영(盈)에 돌아볼 권(眷) 길 영(永)에 권세 권(權) <Ⅰ>

등록일 2022-04-04 20:09 게재일 2022-04-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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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건욱

허 형사가 메모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박 팀장에게 설명을 했다.

-만약에 출발부터 다른 차를 타고 갔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어?

허 형사가 컴퓨터에 영상 하나를 띄웠다.

-이게 병원 지상, 지하 주차장 CCTV 전체 영상입니다. 살펴봤는데 지상, 지하 주차장 그 많은 자리를 두고 CCTV 사각지대에 주차가 되어 있었나 봅니다.

피해자 차량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이지가 않아요. 여기 보시면 피해자가 보입니다. 피해자도 자기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한참 동안 지하 2층 주차장을 돌아다니더라고요. 그러다가 여기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 구역에는 CCTV가 없다 하네요. 피해자가 보이지 않은 시점 후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살폈는데 이십 분 정도 있다가 피해자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십 분이면 좀 길지 않아?

-길죠. 무슨 일을 한 건지 알 수도 없고. 주차하러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이 워낙 많은 곳이라 시간대를 맞추어서 살피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큰 회사의 회장이나 되는데 혼자 퇴원하게 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일이 그렇게 되려고 하니 그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

-왜 혼자 퇴원했다는데? 마우스가 왜 이래?

박 팀장이 마우스로 영상을 확대하려 했으나 마우스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까부터 이상하더니. 건전지가 다 되었나 봅니다. 갈아놓겠습니다. 왜 혼자 퇴원하게 두었는지 물어봤지요. 인공 폐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한참 동안 입원을 했답니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상태가 되어 퇴원을 했는데 피해자가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안 맡기는 성격이라네요. 나이가 팔십 일곱인데도 자기가 운전할 수 있다고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했답니다.

담당 교수가 그러는데 마지막 회진을 돌 때 그랬답니다.

혼자 퇴원해서 회사에 깜짝 출근을 할 거라고. 그래야 평소에 직원들이 어찌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고.

하나 있는 아들은 해외 출장을 갔고 사실혼 관계이던 여자는 산전 진찰을 갔었답니다. 하필 그날.

-산전 진찰? 무슨 말이야? 손주 며느리도 아니고 사실혼 관계? 팔십 일곱이라 안 했어?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그게, 마이걸이랍니다. 마이걸. 나 같은 홀아비는 피해자 가족이나 용의자들 쫓아다니고 구십이 다 되어가는 노인은 어린 여자하고 그러고 있고. 세상이 그런 거지요, 뭐. 임신까지 시켜가면서. 임신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사건 별로 재미없습니다. 나는 왜 사나 싶기도 하구요.

의자에서 일어난 박 팀장은 허 형사의 등을 토닥였다.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가자며 허 형사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하여튼 이거 빨리 끝내자. 위에서 말 나왔다. 빨리 그리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라고.

허 형사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았다가 뱉어냈다.

-그게 재촉한다고 됩니까?

박 팀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서장님한테 전화가 온 모양이야. 김영권이라고. 국회의원. 있잖아, 지난번 전 국민 기본 소득 국민 투표 부결시킨 그 국회의원. 피해자와 관계가 깊었던 모양이야. 범인을 반드시, 빨리 잡아내라고 서장님에게 닦달을 했나 봐. 그 국회의원이 지금 여당 실세라며?

허 형사는 담배꽁초를 종이컵 바닥에 문질렀다.

-김영권요? 국민 기본 소득 부결시키고 노인 기본 소득으로 바꿔 통과 시킨 그 사람이지요? 거기도 나이가 팔십이 다 되었을 겁니다.

팔십이 다 되어가는 정치가와 구십이 다 되어가는 부자라. 친할 수밖에 없겠네요. 지들이 다 해 처먹고 있으니.

혼자 먹으면 심심했을 거고. 니미, 젊은 나는 똥이나 닦고 있고. 아, 갑자기 이 사건 수사하기 싫어지네. 팀장님, 이 사건 다른 팀 주면 안 됩니까? 아니면 뭉개다가 미제사건으로 처리해버리든지.

박 팀장은 두 손으로 허 형사의 양쪽 어깨를 주물렀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렇지. 그래도 어쩌겠냐. 우리 일인 것을.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다른 사건 해결하러 가야지.

허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의 손을 어깨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네, 압니다. 알지요. 그냥 기분이 그렇습니다.

둘은 경찰서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박 팀장이 앞서서 계단을 걸어 올라갔고 허 형사가 뒤를 따랐다.

-팀장님, 이상한 게 또 있습니다. 굳이 왜 시신이 발견되도록 두었냐는 겁니다. 어디에 묻어버리거나, 물속에 던져버려도 될 것을 굳이 옷을 다시 입혀 차에 태웠냐는 거지요. 일부러 발견되기를 원했던 거잖아요.

-그러네. 단순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겠어. 범인을 잡으면 꼭 물어보자고.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왜 그랬는지 추측이라도 해야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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