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연재소설 ‘Grasp reflex’
-백주 대낮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노인을 상대로 한 범죄라는 것도 치가 떨리는 일이지만, 그 목적이 인공 장기를 탈취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더욱 화가 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슬픔 그리고 큰 분노를 느낍니다. 약속하건데 반드시 범인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지구, 아니 우주 끝까지라도 쫓아가야지요. 잡아와서 법정 최고형으로 죗값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슬픕니다. 정말 슬픕니다. 오늘 우리는 큰 어른을 잃었습니다. 이제 누가 있어 우리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와 봉사의 길을 보여주겠습니까?
카메라 플래쉬의 불빛이 사방에서 터졌다. 불빛을 배경으로 영권이 필립에게 다가왔다. 필립은 고개를 숙였고 영권은 두 팔로 필립을 안았다. 필립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은 병원과 경찰서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삼십 분 후 영권은 급한 일정이 남아 있다며 장례식장을 떠났다. 영권을 배웅하고 돌아온 필립에게 아내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만식의 얼굴이었다. ‘노인을 위한 기업, 올더앤베러의 창업주 최만식 회장 영원히 잠들다.’라는 메인 기사 아래 여러 개의 기사들이 달리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만식의 일생과 애도의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차츰 만식의 사인에 대한 보도들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어 만식이 이식받은 인공 장기까지, 이런 일이 없었다면 백삼십 살은 거뜬했을 것이라는 주치의의 인터뷰까지. 급기야 인공 장기가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필립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내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눈을 감았다. 엄지손가락으로 귀 뒤를 누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내가 필립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눈을 뜬 필립에게 아내가 보여준 것은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이었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한 거야? 도대체.
영원히 살려고 했구만.
완전 인조인간이네 인조인간.
그러면 아들은 몇 살인거야? 아버지가 계속 살았으면 회사는 언제 물려받게 되는 거야? 찰스 황태자야?
필립은 아내의 핸드폰을 빼앗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지금 꼭 이런 것 봐야겠어?
당황한 필립의 아내는 핸드폰을 줍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앞이다. 큰 소리 내지 말거라.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이 사람은 항상 이런 식이에요.
필립의 아내는 작은아버지와 친지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필립은 빈소에서 나와 신을 신었다. 몇몇 기자들이 질문을 하며 마이크를 들이밀었지만 손사래를 치며 밖으로 나왔다.
필립은 주차장을 빙 둘러 걸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낮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필립의 마음도 가라앉았다. 아내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영권을 먼저 말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어. 필립은 큰 숨을 내쉬고 걸음을 돌렸다. 인기척이 있었다. 안나였다. 장례식장 안에만 있자니 그녀도 답답했을 것이다.
-힘드시죠?
목례를 하고 지나치는 필립에게 안나가 말을 걸었다.
-…….
-앞으로 사십 년은 더 사실 것 같았어요. 건강하게. 그 정도면 저와 뱃속의 아이가 스스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제게 다른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필립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나가 말하는 동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하현달이 초승달로 바뀌고 있었다. 곧 그믐이겠군.
-예정일이 십일월 이십이 일이라고 했던가요?
필립이 물었다.
-제가 말씀 드린 적 있었나요? 어떻게 아시고.
-몸조리 잘하세요. 지난번 말씀드린 대로, 아버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필립은 빈소로 돌아왔다. 아내는 돌아앉아 있었다. 바닥으로 내팽개쳤던 핸드폰도 그대로였다. 필립은 핸드폰을 가지고 와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내는 눈을 흘겼고 필립은 미안하다 말했다.
검색어 1위가 바뀌어 있었다. 인공 장기는 세 번째로 밀려났고 1위는 최만식 회장 2위는 올더앤베러였다. 생전 만식이 했던 인터뷰가 모 방송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올더앤베러, 부르기 좋아서 만든 이름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나아져야 합니다.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그들이 누리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티브이 속 만식은 티브이 화면 바깥을 응시하며 오른 주먹을 들어 보였다. 티브이 방송을 보던 조문객들이 박수를 쳤다. 그들을 둘러보던 필립은 문득 조문객들이 모두 노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들이 아니었다면 제법 쓸쓸한 장례식장이 되었겠어. 필립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