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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의 시간

등록일 2022-03-13 18:08 게재일 2022-03-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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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아침이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이파리들

자고 나면 잠자리에 수북이 이파리가 쌓여

몸 여기저기에 물빛이 고였다

여러 차례 물빛을 머금는 사이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순응하게 됐다

모든 잎들이 떠나자 겨울나무처럼 나는 다시 앙상하고 소슬해졌고

이슥토록 눈만 서늘히 망연해지다 보니

몸 안 깊숙이 오롯한 물줄기 하나 생겼다

마음 숲 속에 들어앉아 물소리에 잠겨서 흐르는 날들

모르는 사이 어쩌면 나무의 몸 나무의 마음이 되어

이 생에서 저 생으로 건너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분 발췌)

저 푸르렀던 잎들의 죽음, 그 이별의 시간에 순응하면서 시인은 “앙상하고 소슬해”지지만, 뜻밖에도 그는 물줄기 하나를 몸 안에 갖게 된다. 이 물줄기는 소멸되어가는 그의 삶을 다시 소생시킬 ‘나무’가 되는 삶을 그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나무되기’로서의 삶이란 죽음의 긍정을 통해 뿌리의 힘을 키워 대지의 힘과 접속하는 삶이다. 시듦을 수락하면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더욱 깊은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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