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전 윤 당선자는 사시를 앞두고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에 있는 한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것으로 8번이나 낙방했던 윤 당선자는 대구에 오면서도 내내 시험 공부에 열중했다. 가져온 수험서를 거의 정독한 윤 당선자는 대구 도착까지 시간이 남자 평소 사시에는 거의 출제되지 않는 단원까지 꼼꼼히 읽었고 제33회 사시에 이 단원이 그대로 출제돼 9수 만에 사시에 합격하는 영예를 안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윤 당선자는 이때의 기억으로 대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됐다고 국민의힘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1994년 2월 제23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후 윤 당선자는 초임 검사를 대구지검에서 출발했다. 대구에서 1996년 2월까지 2년간 근무했다. 지난 2009년 1∼8월엔 대구지검 특별수사부 부장검사로 부임해 다시 대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윤 검사는 지난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때 정직 1월의 징계를 받고 2014년 1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대구고검에 일할 당시 윤 당선자는 인사 불이익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를 표시하기보다 초탈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당시 근무자들은 기억했다.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이후 민주당과의 갈등을 겪을 때는 연례 방문이라며 대구지·고검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지역 민심을 확인한 후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본격적인 정치에 입문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구 유세때마다 “대구에만 오면 푸근하고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고 언급할 만큼 대구와의 오랜 인연을 강조해왔다. 지난 8일 마지막 대구 서문시장 유세 때도 시장을 가득 매운 뜨거운 열기에 들뜬 목소리로 “대구의 기를 받고 간다”, “힘을 얻고 간다”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결국 윤석열은 대구와의 인연을 이어가며 선거 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