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침 출근길에 차 안 라디오에서 가벼운 질환에 대해서는 가까운 동네 의원을 이용하자는 광고가 나왔다.
대구시의사회에서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광고를 제작하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의료 전달 체계는 종합병원의 환자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병의원을 거친 다음 종합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제도다. 1989년 7월 1일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실시됐다.
동네 병원마다 수억원씩 나가는 기계를 들여 놓을 수도 없고, 동네병원에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감기와 같은 가벼운 병증으로 대학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는 낭비를 줄이자는 의도이다. 1989년 7월 1일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실시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의료전달체계 대한 규제가 매우 약하다.
대학 병원급인 3차 병원의 진료만 진료의뢰서를 요구하며 그나마 이것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실제로 개인 의원을 하다보면 대학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으니 진료의뢰서만 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도 많다.
얼마 전 내원한 40대 환자는 한 번씩 신경을 쓰면 두통이 생긴다고 호소하였다. 뇌 MRI을 촬영하고자 수도권에 있는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 놓았다면서 진료는 필요 없으니 진료의뢰서만을 요구하였다.
환자의 간단한 두통의 경우 뇌 MRI보다는 원인에 따라 약물치료나 운동치료 등으로 좋아 질 수 있고 만약 뇌 MRI가 필요하면 굳이 대학병원보다는 지역 영상의학과에서 MRI를 촬영하면 비용도 저렴하고 빨리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설명을 했으나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해야 믿음이 간다면서 결국 진료의뢰서 발급만을 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화된 것은 의료체계를 단계적으로 이용하도록 도입된 진료권 개념을 의료이용의 불평등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환자 진료 후 의사의 판단에 의해 진료의뢰서가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요구에 의해 발급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의료기관의 규모나 역할과 관계없이 경쟁적으로 외래환자를 유치하는 환경도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린 요인이다.
시설과 인력, 자본이 의원에 비해 훨씬 우월적인 대형병원이 의원과 환자유치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기관도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환자를 유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대형 병원으로 가는 것은 환자의 선택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수도권의 대형병원 쏠림의 피해자는 곧 환자들이다.
3차 병원의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이라도 짧게는 1~2개월, 많게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지나야 예약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학병원 외래에 경증의 환자들이 이미 예약이 많이 차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신천지 사태로 인해 대구 지역에서 수도권 대형 병원 진료를 보기 어려웠을 때가 있었다. 당시 환자들은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갈 수 없는 탓에 처방전을 받기 위해 지역내 의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환자는 수년 전 뇌경색으로 진단받고 6개월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타러 갔다고 했다. 환자가 가지고 온 약은 아스피린 한알과 고지혈증약 한 알 뿐이였다. 어디서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약인데도 불구하고 6개월에 한번씩 수시간이 걸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방문하여 1시간 넘게 기다리고 1~2분의 짧은 진료를 받고 6개월치의 약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급성 뇌경색일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가까운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필요시 시술이나 혈전 용해제를 써야 하지만 급성기가 지나서 만성인 상태에서는 가까운 1, 2차 전문 병원에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
3차 병원에서는 응급과 중환자 위주로 치료를 하고 1, 2차 병의원에서는 경증과 만성 환자 중심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이 더 높아지고 국민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의료전달체계에 의한 의료 이용이 장기적으로 환자의 건강 관리에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TV에서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환자만 보면 병원이 적자가 나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지금처럼 응급환자나 중증환자들의 진료를 저수가로 유지한다면 대학병원에서는 중증환자보다는 많은 외래 환자 유치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중증환자에 대한 저수가를 개편하여 적정 수가로 3차 병원이 중증 환자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들에게는 경증 환자들이 1, 2차 병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국민의 선택권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인식 전환 캠페인을 펼쳐서 할 것이다.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건 호미를 사용하면 된다. 그래야만 정말 가래가 필요한 경우 적재적소에 가래를 쓸 수 있게 된다.